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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7-0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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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환여승람] 충신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1,446)  
① 원탁(元鐸) : 원주(原州) 사람으로 옹암 원청상(瓮巖 源淸常)의 후손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어 무오년(戊午年, 1558, 명종 13년) 심하(深河)의 난리 때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종군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후금군(後金軍)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② 윤창명(尹旵鳴) : 자는 경시(更始), 아호는 백암(白巖)으로 다원(𥥸原) 사람이다. 윤신(尹信)의 아들이다. 선조(宣組, 1567~1608)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이 되었으나, 임진(壬辰, 1592) 난리 때 충절을 지키며 죽었다.

③ 홍원(洪遠) : 자는 상고(尙古)로 당성 (唐城) 사람으로 홍부(洪浮)의 후손이다. 선조(宣祖, 1567~1608) 시대에 진사(進士)가 되었으나 임진왜란 시 충주(忠州) 화개산(華蓋山)에서 변을 당하여 그 이듬해 죽었다. 그의 아들 여수(汝守)도 거의산(車依山)아래에서 싸우다가 온 힘을 다한 후 순절하였다.
그의 부인은 한양조씨(漢陽趙氏)이고 자식 여수의 부인은 전의이씨(全義李氏)로 같은 날 죽었다.

④ 유진(柳縝) : 아호는 벽파(碧波)로 진주(晋州) 사람이며, 벽은(僻隱) 유번(柳藩)의 후손이다. 인조(仁祖, 1623~1649) 시대에 병자호란(丙子胡亂, 1623)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임금의 어가(御駕)를 이동시키고 광주(廣州)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선동하여 적들과 싸웠다. 쌍령(雙嶺)에서 진을 치고 싸우다가 힘을 다하자 순절하였다. 관직은 첨중추부사(僉中樞府事)에 이르렀다.

⑤ 이도철(李道撤) : 자는 성관(盛觀), 아호는 두남(斗南)으로 완산 (完山) 사람으로 졍창군(慶昌君) 이주(李侜)의 후손이다. 고종(高宗, 1863~1907) 시대 궁 수비대의 참령(參領)으로 있다가 갑오(甲午, 1894)정변이 발생하였을 시 곤전(坤殿-왕비가 거쳐하는 궁전)이 화(禍-을미사변 乙未事變, 명성황후 시해)를 입자 의병을 일으켜 원들에게 복수하려 하였으나, 모의(계획)가 사전에 누설되어 체포되었다. 여러차례 모진 형벌(刑罰)을 가했으나 의(義)를 위해 굴복하지 않았다. 병 신년(丙申年, 1896)에 의논하여 묘당(廟堂)을 세워주고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주었다.
협판(協判-차관급)으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민(忠愍)으로 사건의 전말은 <충의록 忠義錄>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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