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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제천문화원 마을기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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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16-07-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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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면] 八先生이 자랑스런 - 도기리(道基里)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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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면소재지가 있는 후촌리 삼거리에서 653번 국도를 따라 선고 1, 2, 3리를 지나 7.5㎞ 거리에 삼거리가 있다. 왼쪽으로 수산면 대전리(大田里)가 위치하고, 오른쪽으로는 도기리(道基里)가 자리한다. 마을은 단양군(丹陽郡)과 경상북도 동노면(東魯面)과 경계지역으로 월악산의 험준한 준령들이 마을로 길게 이어져 있다. 도기리에서 시작되어 선고3리까지 이어진 도랑을 '성천'(星川)이라 부르며, 홍수피해를 줄이기 '성천지구수해복구공사' 가 시작되면서 1998년 현재 도랑 옆에 제방을 쌓고 있다   
 
. 마을은 덕산면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1984년 당시 인구는 773명이었다. 충주군 덕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독기'·'도끼'로 불리기도 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다락골과 양주동 그리고 대동이 병합되어 제천군 덕산면에 편입되었다. 일제시대 때, 대동은 '본말' 또는 '큰말'이라 불렀고 마을은 총 6개반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양주동은 4개반, 다락골(루동)은 2개반을 이루었다. 총 12개의 반이었던 도기리는 일제시대 말에 최고 300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126가구(농가 106, 비농가 20가구) 386명(남 190, 여 196명)이 거주하고 있다(1998년 8월 현재).

일제시대 때, '동맥동' 또는 '물구리'라 하여 구리·동(銅)을 채광하기도 하였지만 매장량이 적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폐광되었다. 1945년경부터 문수산(文繡山, 1161.5m)에서 10여년 동안 무연탄을 채굴하던 문화광산이 이 지역을 대표하기도 했다.
양주동에는 5년전부터 서울 사람들이 약 4가구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데,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마을로 이주한 이들은 도기마을에서 인부를 구해 조금씩 농사도 지으며 마을사람들에게 농사일도 배우고 있다. 이들은 동네 노인회관과 마을기금으로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였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마을 주민들과 지금까지 조화롭게 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경상북도와 인접하고 있어 약 10여가구의 경상북도 주민들도 이주하여 살고 있다. 인근의 경상북도 사람들이 도기리로 이주했던 주된 이유는 이곳의 토질이 좋아 농사를 짓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광산(鑛山)으로 인한 노동인구와 주변인구의 이동으로 도기리는 인구 변화가 많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성씨분포 또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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