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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3-0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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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지역 교육의 산실이었던 남당서원의 복원을 기원하며
 글쓴이 : 전인혁
(조회 : 2,542)  
남당서원(南塘書院)은 조선 중기 현감(縣監)으로 부임한 사담(沙潭) 김홍민(金弘敏)【임오(壬午, 1702) 문경(聞慶) 근암서원(近巖書院) 배향(配享)】이 1580년 처음으로 제천 땅에 건립한 서원입니다. 서원은 학문의 연구와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 학자를 제사지내던 교육기관이자 향촌의 여론을 조성하던 자치기구의 역할을 띄고 있어 지역 내에서는 그 의미가 남다른 장소였습니다.

남당서원에서 제사를 올린 배향인물은 2인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 주향(主享) : 문순공(文純公) 퇴계(退溪) 이황(李滉) 【경진(庚辰, 1580) 본원(本院) 초건시(初建時) 배향(配享)】, 【증시(贈諡) 병자(丙子, 1576)】

○ 배향(配享) : 충목공(忠穆公) 상곡(姜瑜) 강유(姜瑜) 【신묘(辛卯, 1831) 본원(本院) 배향(配享)】, 【증시(贈諡) 병자(丙子, 1816)】

퇴계 위패 봉안시 문간공(文簡公) 창석(蒼石) 이준(李埈) 【상주(尙州) 옥성서원(玉成書院), 풍기(豊基) 우곡서원(愚谷書院) 배향(配享)】이 「남당서원퇴계선생봉안제문(南塘書院退溪先生奉安祭文)」을 올렸는데 이 글은 『창오선생문집(蒼石先生文集)』에 남아있어 당시 제천 땅에 처음으로 퇴계 선생의 위패를 모시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퇴계의 문인이었던 송간(松澗) 황응규(黃應奎)는 오언절구의 「남당서원(南塘書院)」이라는 시를 남겼는데 『송간집(松澗集)』에 실려있어 전문을 옮겨봅니다.

 
靑衿濂洛學 선비들 주자의 학문을 배우는데

白鹿晦菴風 백록서원 주자의 유풍이라네

萬古山西地 만고의 오랜 산서의 땅

洋洋絃誦中 끝없이 이어지는 글 읽는 소리


남당서원의 ‘남당’은 서원 남쪽에 있던 연못, 즉 ‘동방제(東坊堤)’를 이르는 것인데 서원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이 남당이 서원 앞에 있었기에 그 이름을 취한 것입니다. 당시 서원의 출입문인 문루는 ‘군자루(君子樓)’라 하였으며, 남당의 연못에는 연꽃이 무성하였다고 전합니다.

1825년 이전에 서원의 현황을 전하는 『제천현읍지(堤川縣邑誌)』에 의하면 【원생(院生) 20명, 원노(院奴) 2명, 원비(院婢) 1명, 보노(保奴) 10명】을 두었다고 전하며 이미 이 시기에 없어져 교육과 향사의 기능은 끊겼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서원의 터는 충청북도 제천시 내토로34길 10에 소재한 코알라빌로 추정되며, 남당의 연못은 충청북도 제천시 영천동 1383-1에 소재한 옛 대한통운 제천영업소(현 제천시락국) 옆 테니스장으로 비정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르러 지역의 역사 속 잊혀졌던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그 의미를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나, 아직 제천 남당서원은 그만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학문을 진작시키고 선현에 제사를 올리던 전통을 지금 시점에 다시금 주목하여 서원 터에 유지비(遺址碑)나 안내판을 세워 제천의 역사 속 남당서원의 존재를 시민에게 알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여론이 조성된다면 관내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 서원을 복설하고, 시민들의 문화향유 공간으로 조성하는 한편, 자라나는 지역 청소년에게 향사 체험 활동 등을 제공함으로써 향토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상과 같은 남당서원의 복원 및 알림 활동에 있어 제천문화원의 관심과 적극적인 활동 전개를 바라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전 인 혁

문화원 21-04-13 10:17
제천지역의 문화자원에 대한 연구와 관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역문화의 가치관을 발견하는 일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더 나은 미래의 모습을 함께 꿈꾸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남당서원의 복원에 대한 제안에 대해 제천시와 협의하여 적극 검토하여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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