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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03 16:51
농경문화의 중심지 제천의 사직단 복원을 기원하며
글쓴이 :
전인혁
(조회 : 5,084)
제천은 밀양의 수산제, 김제의 벽골제와 함께 한국 3대 저수지로 널리 알려진 의림지가 있는 고장으로 ‘농경문화의 발상지’라 자부하며 이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의림지에 대한 자부심이나 그 관심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앞서 언급한 수산제나 벽골제가 유지(遺址)로 남아있는 반면 의림지는 현재에도 제천의 농업에 커다란 영향을 주며 저수시설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가 많았다. 제천이라는 고장이 진정으로 ‘농경문화의 발상지’를 주장하기 위해서 보다 중요한 시설물이 한 가지 정도 더 필요하지 않은가하며 왠지 모를 허무함이 머리 한 켠을 계속 자극해왔다. 그러던 중 나는 《국내 사직단/사직단 유지 소재지 일람》이라는 개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전국 각지의 사직단과 사직단이 소재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들을 찾아나섰다.
‘사직동’이라는 지명으로만 남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버린 곳도 있었으며, 해당 지자체의 문화원이 주도하여 사직단 복원을 활발하게 촉구하는 곳도 있었다. 또 사직단이 존재함에도 지역주민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방치되다시피 한 곳 역시 상당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조사하던 중 내가 살던 고장 제천의 사직단 터가 발굴되었다는 인터넷 뉴스기사를 찾아낼 수 있었다. 2005년 (주)한국토지신탁이 중앙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2월 4일부터 4월 18일까지 하소동 산25-3번지 일원 1만4000㎡를 대상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해 사직단 터를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우리 제천의 지역사회 내에서는 이 사직단의 존재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지 그 이후 사직단 터에 표석의 설치나 복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강한 불만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농경문화의 발상지’를 주장함에도 정작 농경문화에서 가장 중시되어온 제례 중 하나인 사직제(社稷祭)의 제장(祭場)인 사직단에 대한 인식은 바닥을 기다 못해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이 아닌가?
조선시대 국왕과 그 휘하 조정의 신료들이 항상 언급하던 것이 ‘而民以食爲天’ 이라는 여섯 글자였다. 그만큼 백성의 삶과 직결되는 한 해 농사의 풍흉은 초미의 관심사일 수 밖에 없었고 기곡의례(祈穀儀禮)로서의 사직제는 중앙에서는 물론이고 각 주현(州縣)에서 석전(釋奠)과 함께 가장 중시되던 제례였다. 제천의 지역문화 활성화와 스스로 구호(catchphrase)로 주장하는 ‘농경문화의 발상지’에 보다 충실하고자 한다면 사직단 복원에 적극적인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제천 사직단의 복원은 단순히 문화유산 재정비의 차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사직단이라는 장소는 의림지와 연계하여 우리들이 살아가며 항상 발 딛고 있는 토지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섭취하는 곡식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전통 제례의식을 봉행함으로서 선조들이 이어온 ‘보본반시(報本反始)’의 이념을 계승해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조망하고 나아가 제천시민들의 정신적 유대와 화합을 이룩할 수 있는 장으로서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 속에서 재탄생한 사직단이 사랑받고 보호받는 그런 미래가 빠른 시일 내에 당도할 것을 원해 마지 않는다. 제천문화원이 제천 사직단 복원에 대한 관심과 활동을 전개하기를 적극 요청하는 바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정보학
전 인 혁
문화원 19-04-29 09:55
전인혁 연구원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제천의 전통과 문화를 위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천에게 의림지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것 맞습니다. 농경문화의 발상지와 사직단에 대한 소중한 제의 감사하고 적극 검토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