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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인물

제천문화원 제천의인물 입니다.

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8-0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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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인물] 황학수(黃學秀, 1879~1953)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1,560)  
본관은 창원(昌原). 일명 이국현(李國賢). 자는 필옥(弼玉), 호는 몽호(夢乎). 제천 출신. 1898년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참위(參尉)에 임관되었다. 그 뒤 부위(副尉)로 승진되어 육군유년학교(陸軍幼年學校)의 교관이 되었다. 1907년 8월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 당하자 고향, 제천으로 낙향해 동지와 협력, 동명학교(東明學校, 현 동명초등학교)를 설립하고 육영사업에 전념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3·1운동 이후에는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원 및 군무부 비서국장으로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이 혼미해지자 1920년 남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참모장과 중앙집행위원 및 군사부장(軍事部長)을 역임하면서 무장독립투쟁에 헌신하였다. 1923년 북만주 신민부(新民府)의 중앙집행위원 및 참모부장에 취임해 활약하였다. 1924년에는 신민부 군사부장으로 활약하면서 군민의회(軍民議會)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한족동향회(韓族同鄕會) 이사와 한국독립당 집행위원과 한국독립군 사령도 지냈다. 1938년에는 다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사위원에 취임했다가 1939년에 임시의정원의원에 재선되었다.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도 겸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사특파원으로 산시성(섬서성) 시안(西安)에 주둔 중 1941년 광복군사령부가 시안에 설치됨으로써 광복군특별당부 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그 뒤 충칭(重慶)에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이 되었으며 생계부장(生計部長)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제천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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