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8-01 15:06
[의병인물] 순국선열투사창의 기념비
글쓴이 :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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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운(百狂雲) 투사는 제천시 덕산면 출신으로 본명은 채찬(蔡燦)이다. 1905년 왜적과 싸우다가 이강년 의병장을 따라 만주로 망명, 통하현 신흥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백서농장을 경영하면서 둔전제를 실시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시다. 3·1운동 후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동지드로가 국내에 잠입, 일제 기관 파괴와 경찰서를 공격하였으며, 1923년 임시정부 참의부를 결성 일제 총독 사이토를 습격하는 등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쳤으나 일제의 앞잡이에 의해 살해되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정호섭(鄭鎬涉) 투사는 덕산면 도기리 출신으로 소년시절 만주로 이주하여 1914년 7월, 22세 때 북간도 연길현 명월주에 참모부를 설치하였다. 조국광복을 위해 무기를 소지하고 함경도에 잠입하여 크게 활약하다 1920년 1월 함흥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일제에 굴하지 않고 위국충정으로 일관하였다.
서상무(徐相懋) 투사는 덕산면 선고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벼승리 승지에 이르렀으나. 1895년 류인석 선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고종 34년 칙유상관이 되었지만 부관 김연식과 만주에 가서 류인석을 초청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안춘흥(安春興) 투사는 덕산면 선고리에 거주하다가 1907년 이강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그 후 의병을 양성하는 교관으로 독립운동에 크게 활약하였다.
전재규(全在奎) 투사는 덕산면 신현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참봉 벼슬을 지내다가 1896년 충주·단양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체포되어 일생을 마친 독립 투사이다. (1989년 10월, 제천시 덕산면노인회원 일동 건립,『비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