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28 13:15
[의병인물] 백남규(白南奎, 1884~1970)
글쓴이 :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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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운암,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일찍이 대한제국 무관학교(武官學敎)를 졸업한 후 안동 진위대 부위로 근무하였다. 1907년 한국군이 일제의 책동에 의하여 강제 해산 당하자, 동지를 규합하여 경북 순흥(順興)에서 의병을 일으켜 부하 8백 명을 거느리고 왜병과 접전하였다. 그때 의병장 이강년이 횡성의 봉복사(鳳腹寺)에서 유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창자가 만났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이강년의 인품에 감복되어 그와 합진할 것을 결의하고 부하 8백 명을 거느리고 들어가 이강년 의진의 우선봉(右先鋒)으로 임명되었다. 9월 16일 추치(椎峙)에 복병하였다가 적 2백 명을 사로잡았다. 그후 이강년 의진은 경북 일월산(日月山)을 근거지로 하여 활약하였으며, 인제 백담사(百潭寺), 안동 서벽(西壁), 봉화 내성(乃城), 그리고 안동 재산(才山)에서 크게 적과 접전하였는데 백남규의 활약상은 특히 괄목할 만 하였다. 그러나 1908년 6월 의병장 이강년이 적에게 체포된 뒤에는, 김상태가 의진의 지휘권을 행사하였고, 백남규는 그 일부대를 나누어 가지고 서벽·내석·아산(牙山) 등지에서 적과 접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1909년 죽산(竹山)에서 적과 접전하다가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8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출옥하였다. 1918년에는 상해(上海)로 망명을 기도하다가 거듭 체포되어 15년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유공자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