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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7-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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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인물] 안재극(安在極, 1879~1940)
 글쓴이 :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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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기오(其五), 호는 사암(寺菴), 본관은 순흥, 경북 에천 용궁 출신으로 의당 박세화의 문인이다. 아호 사암도 일찍이 스승 박세화가 지어 준 것이다. 1905년 월악 산중에서 스승 박세화가 거의하자 이에 뜻을 같이 하였고, 1907년 그는 이강년 의진에 참여하여 좌종사로 활동하였다. 안재극도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으나, 결국 1910년 8월 주권이 완전히 상실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 의지에 불타는 그는 일제의 주권 강탈의 부당성을 성토하고. 「8도의 동포에게 고하여 삼군(三軍)을 규합해 일제를 타도하자」는 「격문」과「유효문」을 작성하였다. 또한 그는 의병을 재규합하여 항전하려는 의도에서, 동지인 이지원(李芝元)·이승재(李承載)·한양이(韓良履)·윤태휴(尹泰休) 등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여 일제를 몰아내고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자는 격문을 작성하여 항일의지를 불태웠다.
  한편 그는 이강년 의병장이 순국하자, 그의 장아 이승재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병을 얻어 객지에서 사망한 소식을 듣고, 여러 동지들에게 알려 재물을 마련하여 고향으로 보내는 주는 등 독립운동가의 가족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한 이강년 의병장을 추모하여 1919년 「운강이공전(雲崗李公傳)」을 저술하였으며, 1923년 스승 박세화의 절명시와 예의조선(禮義朝鮮) 4대자를 탁본, 널리 간행하여 항일의식을 고취시킴은 물론 스승을 기리는 정성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후 예천에서 후학을 양성하여 문인 500여 명을 배출시켰다. 문집으로는 『사암집(思菴集』6권4책이 있으며,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묘소는 예천군 용궁면 월오리에 있으며, 2011년 4월 사림의 뜻으로 제천 병산영당에 봉안하고 춘추로 제향하고 있다. (참고문헌 : 병산영당 배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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