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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7-2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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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인물] 박세화(朴世華, 1834~1910)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3,022)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본관은 밀양이다. 함경도 고원 출신으로 위정척사 계열의 학문을 견지했다. 1886년부터 약 22년간 제천일대에서 강학활동을 하였으며, 1893년 조정에 추천되었으나 사양했다. 다시 1895년 영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얼마 후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발하자, 제자들을 거느리고 거애(擧哀)하였다. 이어서 단발령이 내려지자 좌시(坐視)하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을미의병에는 제자들을 류인석의 제천의진에 보내어 돕게 하였다. 1905년 박세화는 문인들과 함께 월악 산중으로 들어가 거의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거사 계획이 일제에게 노출되었고 박세화 자신이 노환(老患)으로 성사시키지 못한 채 문경병참소에 체포되었다. 이때 회당(晦堂) 윤응선(尹膺善)이 연좌되었다. 박세화는 화당에게 늙은 어머니를 보양하라면서 거듭 떠날 것을 권하였으나 듣지 않고 함께 체포된 것이다. 한성사령부에서 9개월간 구금되었다. 그가 체포되자 문인  신현국(申鉉國)과 이수영(李秀永)이 경찰서장에게 투서하여 스승의 거사가 대의(大義)에 합당한 것이었으니 석방시켜 줄 것을 호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들이 경찰서를 크게 파괴하였는데, 이 일로 3개월간 대구형무소에 구금되었다. 박세화는 만년에 청풍의 불억산(茀億山)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전력을 다했다. 1910년 국권이 강탈되자 절식(絶息)하다가 23일 만에 순국하였다. 단식 중지를 종용코자 찾아 온 일본헌병의 말잘화를 곰방대로 내려치며, 당장 물러가라고 호통 친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제천의 병산영당(屛山影堂)과 음성 충룡사(忠龍祠)에 배향되었으며, 문집으로는 『의당집(毅堂集』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참고문헌 : 의당집 · 제천의병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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