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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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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물] 이 산 해 [1539∼1609]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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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관에서 꿈을 꾸고 낳았다 하여 아기의 이름을 '산해'라 지으니 이가 곧 조선중기 문신 이산해이다. 이산해는 제천시 수산면 출신이다. 태어날 때부터 보통 아이가 아니란 걸 안 토정 이지함은 5세 때부터 학문을 가르쳤는데 얼마나 열심으로 책을 읽는지 침식을 잊을 정도라 했고, 6세 때에는 능히 붓글씨를 쓰니 모두들 그를 신동이라 칭했다 한다.

1558년(명종 13) 19세로 진사가 되고 3년후 22세 때엔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에 홍문관 정좌로 벼슬길에 들었는데 이때 명종의 명을 받고 경복궁의 현판을 썼다. 이어 부수찬이 되고 1564년부터 그는 병조좌랑, 수찬, 이조좌랑을 역임했으며 1567년(선조 즉위년)엔 원접사 종사관으로 명나라 조사랄 맞이하고 그후 이조정랑, 의정부 사인, 사헌부 집의, 상의원정, 부교리, 직제학, 교리, 응교를 거쳐 동부승지와 이조, 예조, 형조, 공조의 참의를 차례로 역임하고 대사성, 도승지가 되었다.
1578년에 대사간이 되고 이듬해 대사헌에 승진되고 1580년 병조참판에 이어 형조판서, 이조판서, 우찬성에 차례로 오르고, 다시 또 이조, 예조, 병조판서를 역임하면서 제학, 대제학, 판의금부사, 지경연, 춘추관, 성균관사를 겸하였다.

그리고 1588년 영의정 노수진이 추천하여 우의정이 되었는데, 이 무렵 동인이 남인, 북인으로 갈라지자 북인의 우두머리로 정권을 잡았고,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3등으로 올라 아성부원군에까지 책봉되었다. 그 다음해에 그는 좌의정에 오르고 이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낸 그는 특히 문장에 능하여 선조조 문장팔가의 한 사람으로 불렸으며 서화에도 능하여 대자와 산수묵도에 뛰어났으니 용인에 있는 조광조 묘비와 안강에 있는 이언적의 묘비는 그가 쓴 것이다. 저서로는 그의 호를 딴 「아계집」이 있다. 시호는 문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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