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문화사료관 제천의 인물

   

제천의인물

제천문화원 제천의인물 입니다.

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5-11-07 14:30
목록
[의병인물] 윤양섭(尹陽燮 1852~1907)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804)  

愛國志士
 坡平尹先生陽燮之墓
 配孺人豊山洪氏祔左
 윤양섭(尹陽燮 1852~1907) 선생의 휘는 陽燮, 자는 敬理, 호는 小白, 본관은 파평으로 一八五二년 九月 八日 숙종조의 문신 尹憲柱의 현손으로 단양에서 출생하였다. 兄 梅澗 鼎燮과 함께 한말의 대유학자 毅堂 朴世和의 문인이기도 하다. 一八九六년 二월 제천의병진이 중부지방의 요충지인 충주성을 공략할 때 윤양섭은 형 정섭과 함께 힘을 다해 싸웠다. 또한 가흥과 수안보의 일본군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적군의 재공격으로 충주성에서 후퇴한 후 곳곳에서 전투를 전개하며 평안도를 거쳐 중국 요동으로 건너가 장기 항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柳麟錫을 수행하여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심양에서 중국 정부와 군사제휴를 협의하는 등 抗戰意志를 굽히지 않았다. 이후 두 형제는 귀국하여 소백산과 월악산을 중심으로 제천, 충주, 단양, 영월, 문경 등지에서 줄기찬 투쟁을 이어 나갔다.두 형제가 얼마나 치열하게 의병항쟁을 하였는지 일제는 당시 단양 상선암 위의 벌천리 궁터골에 있던 기와 전통가옥인 생가를 불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종증손 명근은 증언하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며, 의병투쟁을 이어가던 선생은 一九0七년 三월 一일 운명하였다.

 「윤양섭은 儒學을 지키던 집안 대대로 文行과 志操가 있었고 형 정섭과 함께 진중에서 일을 주선함에 시종 마음과 힘을 다하였다.요동에 들어가서는 갖은 風霜을 겪고 고생을 하면서도 힘써 뜻을 더욱 견고히 하고 국내로 돌아와서는 몸을 단속하면서 의리를 지켰다. 義兵活動을 할 때도 형제가 독실하게 나라와 도를 걱정함에 못하는 일이 없었다.불행히 중년에 운명을 달리했다.」고 의암 류인석은 선생을 추모하였다.
 
  이러한 선생의 忠節과 義兵抗爭을 기리고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二0二十一년 十월 제천문화원에서 묘역을 새롭게 단장하고 제천시민의 뜻을 모아 비석을 세우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