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04 16:47
[조선환여승람] 문행
글쓴이 :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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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김명주(金命胄) : 자는 득겸(得兼), 아호는 묵묵재(墨墨齋)이며, 경주(慶州) 사람이다. 상촌 김자수(桑村 金自粹)의 후손이다. 현종(顯宗, 1659~1674)시대에 생원.진사가 되었으며, 그의 자질은 탁월함이 있었다. 다른 사람과 다름이 있었음은 물론 그의 글(文)은 소박하고, 넓은 뜻과 밝은 펼침이 있었다.
고시(古詩) 여러 편과 악부(樂府)를 지었고, 취병산(翠屛山)에 은거하면서 가사(歌詞)도 지었으며, 문집(文集)을 남겼다.
남휘당 이연(覽輝堂 李演)이 쓴 행장 기록이 있다.
② 조성(趙渻) : 자는 성지(聖至), 절의(節義) 조섬(趙銛)의 후손이다. 본 성품이 인자하고 후덕하여 부모님을 봉양함에 있어서도 효(孝)를 다하였다.
글과 학문의 경지는 높았고, 과거에 응시하지는 않았으나 관직은 첨중추부사(僉中樞府事)에 이르렀다.
③ 최영식(崔英植) : 자는 선장(善長), 아호는 은호(㒚湖)로 해주(海州) 사람이다. 쌍백당 최은(雙柏堂 崔圻)의 후손이다.
타고난 자질과 품성이 온순하고 글과 학문에 일찍 눈을 떠 시율(詩律) 에 큰 성장이 있었다. 성재 유중교(省齋 柳重敎)와 더불어 도덕과 의(義)를 위하여 의견을 교환하면서 책(저술서) 1권을 저술하였다.
④ 이광후(李光厚) : 자는 덕중(德重), 아호는 남강(南岡)으로 광주(廣州) 사람이다.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의 후손이다.
품성이 온순하고, 후덕하며 자질이 깨끗하고 순수하다. 학문을 함에 있어서는 뜻이 돈독하였고, 언행과 행동은 순수하고 절박하였으며 고풍스러웠다. 집에 은거하고 있을 때도 사람을 만날 때는 덕(德)으로서 대접하니 고을 사람들이 흠모하고 우러러 보았다.
⑤ 허간(許侃) : 자가 덕삼(德三)으로 양천(陽川) 사람이다. 초당 허엽(草堂 許曄)의 후손이다, 어릴 때부터 전심전력을 다하여 학문을 연마하여 자신을 수양 하고(修身) 집안을 가지런히 하였다. 이로써 고을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어 추앙되고 존중하였다.
⑥ 안종철(安鍾喆) : 자는 경천(敬天), 아호는 오산(悟山)으로 순흥(順興) 사람이다. 동오 안광욱(董塢 안광욱(安光郁))의 후손이다. 가난함을 편안케 생각하고 분수를 지키면서 온 힘을 다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뜻을 돈독히 하였다.
운림(雲林)에 은거하며 소요하고 마음 내키는대로 자유롭게 지냈다. 관직은 도사(都事)에 이르렀으며, 유고(遺稿)가 있다.
⑦ 신용균(申容均) : 자는 선명(善明), 아호는 묵암(默菴)으로 선문공(善文公) 신공하(申恭河)의 아들이다. 타고난 성품이 온순하고, 효행과 우의는 돈독하고, 화목하였다. 집에서는 법도에 맞게 자식을 가르치고 의(義)로움이 있는 사람이다. 선비(학자)와 친우들 사이에 명성이 높아 존중되었다.
⑧ 김병성(金秉聲) : 자는 도용(道容), 아호는 채은(採㒚)으로 강릉(江陵) 사람이다. 일노 김양남(逸老 金陽㑲)의 후손이다.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근실하며 학문이 돈독하여 유교경전에 밝았다. 자신의 처지를 편안하게 지키고, 검소하며 절약하는 자세로 자신을 지켰다. 법도에 밝은 선비와 친우, 종친 및 친족들이 모두 감탄하며 그의 의(義)를 따랐다.
⑨ 최종구(崔鐘龜) : 자는 원백(元伯), 아호는 혁재(赫齋), 로 경주(慶州) 사람이다.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의 후손으로 의당 박세화의 제자다. 검소하고 절약하는 성격에 예(禮)를 좋아하며, 자신이 처신함에 있어서도 겸손하고 공손하게 하였으며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도 효(孝)로서 지극정성을 다하여 고을에서 모범이 되는 기준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