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07 13:47
[조선환여승람] 절의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2,654)
① 장구주(張九疇) : 아호는 송암(松巖)으로 인동(仁同) 사람이다. 옥산군(玉山君) 장계(張桂)의 후손이다. 세종(世宗, 1418~1450)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월(寧越) 군수가 되었다. 단종(端宗)이 폐위된 후 사당을 세우고 충서을 다하여 받들고 봉양하기를 다하였다. 단종이 죽자 통곡을 하며 관직을 버리고 청풍(淸風)에 몰래 들어와 고명상(膏明山) 중에 은둔하며 세상과 단절을 하였다. 그의 곧은 충정과 의로운 절개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사림(士林)들은 뜻깊은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
② 원호(元昊) : 자는 예허(豫噓), 아호는 관란(觀瀾) 으로 원주(原州) 사람이다. 시중(侍中) 원홍필(元弘弼)의 후손이다.
단종(端宗, 1452~1455)시대 문과에 급제하여 제학(提學)이 되었으며, 단종이 영월로 유폐된 후 원호가 영월(寧越) 서쪽에 살면서 단종을 그리워한 나머지 사방 6척(사방 180cm)의 얿이에 관란정(觀瀾亭)을 짓고, 새벽 (아침 일찍)부터 저녘까지 정자에 올라가 단종이 있는 곳을 쳐다보면서 그리워 하였다. 병자년(丙子年), 1456)에 상복(喪服)을 입은채로 다시 원주로 돌아와 영월이 있는 곳을 향해 누워서 <필동자분 筆洞磁粉>이란 저술을 남겼다.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추증되었으며, 공주(공주) 숙모전(潚慕殿) 곁채에 배향 되었으며, 생육신(生六臣)의 한 명이다.
③ 조섬(趙陝) : 한양(漢陽) 사람으로 절효공(節孝公) 조뢰(趙賚)의 손자다. 단종시대 부모님의 은공으로 도사(都事)가 되었다. 세조(세조, 1455~1468)가 임금이 되자 단종은 남해(南海一영월)로 귀양을 갔다. 그후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며 3년 상을 치룬 후 병이 들어 죽었다. 단종에게 입은 은혜 때문에 매번 조정에서 불러도 끝내 경사(京師-서울)에 들어가지 않았다. 단종의 사당을 참배하는 것을 꺼리는 시기에 자주 찾아 목매어 울면서 눈물을 흘려 사람들이 추강(秋江-남효은) 과 비교하곤 하였다. 유학자(儒學者) 청한(淸漢)의 아들로서 임신을 했던 손자 철형(喆衡)이 쓴 행정기록이 있다.
④ 유안례(留案醴) : 효자편(孝子篇)에 자세한 기록이 있다. 세조(世祖, 14355~1468)가 강제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청풍(淸風) 고산동(居山洞)에서 듣고, 단종이 폐위되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3일간 곡기를 끊었다. 매월 초하루에 제단(제사상)을 차려놓고 통곡을 하였으니 이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가 사는 마을을 조왕곡(조왕곡)이라 하였고, 그가 있는 산을 국사봉(國思峰)이라 하였다. 수산 김세창(修撰 金世昌)이 쓴 행적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