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07 16:31
[조선환여승람] 효자
글쓴이 :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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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박전(朴廛) : 말양(密陽) 사람으로 관직은 동지(同知)였으며, 효로 인해 정려(旌閭) 표창을 하였다.
② 조이종(趙以悰) : 그의 여동생과 함께 효(孝)로 인해 정려(旌閭) 표창을 하였다.
③ 유자하(柳自河): 그의 부친이 병이 들어 똥, 오줌을 수발하는 효행을 하여 정려로 표창하였다.
④ 유안례(儒案禮) : 자는 의보(義甫), 아호는 의두헌(椅斗軒)으로 강릉(江陵) 사람이다. 문희공(文僖公) 창(敞)의 후손이다. 세종(世宗, 1418~1450) 29년(1447, 丁卯年)에 무과에 급제 하였으나, 일찍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 어머니가 병(病)이 들어 살리고자 손가락을 잘라(斫指) 회생 시켰으며,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丁憂) 초막에 기거하면서 머리에 쓰는 수질(首絰)과 허리띠(腰帶)를 풀지 않았다. 효성이 지극함으로 별시(別試)에 천거되었고, 절의(節義)편에 기록이 있다.
⑤ 강재무(姜宰珷) : 자는 성백(成伯), 아호는 사우당(四友堂)으로 진주(晋州) 사람이다. 통정 강회백(通亭 姜淮伯)의 후손이다. 효성이 지극함으로써 죄랑(佐郞)으로 추증되었으며, 팔탄(八灘) 남용관(南庸寬)이 쓴 비(碣)가 있다.
⑥ 조청록(趙淸祿) : 자는 운겸(雲兼), 아호는 운암(雲庵)으로 한양(漢陽) 사람이다. 사마(司馬)_ 조재명(趙載明)의 손자다. 순조(純祖, 1800~1834)시대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제수되었다. 송하(松下) 조연용(趙淵龍)이 쓴 행장기록이 있다.
⑦ 최용필(崔龍弼) : 자는 운로(雲路), 아호는 운암(雲庵)으로 한양(漢陽) 사람이다. 둔재 정립(遯齋 挺立)의 후손이다. 일찍 아버지를 잃고, 모친 섬기기를 지극정성을 다하여 받들었다. 진실된 마음으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을어 학문에 정진하였다. 순조시대에 사마(司馬) 시험을 치룬 후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전심전력을 다하여 성리학을 공부하였고, 송(宋-북송, 남송 포함) 7현(賢)을 공부하는 서재내에 모셔놓고 초하루 보름에 알현하며 받들었다. 유고집이 있으며 판서(判書) 남헌교(南獻敎)가 쓴 행적 기록이 있다.
⑧ 박한규(朴漢圭) : 자는 순호(淳皓), 아호는 동암(東庵)으로 밀양(密陽) 사람이다. 공효공(恭孝公) 박중손(朴仲孫)의 후손이다. 천성이 온화하고 부모 섬기기를 극진한 정성으로 몸과 마음을 다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머리에 종기가 났을 때 입으로 빨아 종기를 치료하였으나, 불행이도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장례를 치룬 후 10일이 지나자 묘지에 심었던 나무들이 모두 황색(黃色) 으로 변하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효행에 감동한 바 황홀한 극치를 이룬 것의 표현이라 하였다. 포상하고 표창한 증거서류(書)가 있다,
⑨ 최인엽(崔璘燁) : 성품이 본래 정직하고, 부모님을 섬길 때 지극한 효(孝)로써 하는데 몸과 마음을 다하여 봉양하였다. 사람들 모두가 흠모하고 감탄 하였으며, 또 자상하고 착한 덕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일깨워 본보기로서의 혜택을 보였다.
⑩ 장선근(張善根) : 자는 백원(白原)으로 단양(丹陽) 사람이다. 훈구대신 장봉남(張奉男)의 후손이다. 본래의 성품이 인자하고, 후덕스러우며,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도 효(孝)를 다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기일발의 처지에 놓였을 때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살려냈다. 부모님의 상을 당하여서도 초막(廬幕)에서 3년간을 지내며 묘소를 지키며 술과 고기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사람들 모두가 흠모하고 감탄하였다. 포상과 표창의 증서가 있다.
⑪ 정재하(鄭在夏) : 자는 경우(敬遇), 아호는 합고당(盒古堂)으로 봉화(奉化) 사람이다. 삼봉 정도전(三峰 鄭道傳)의 후손이다. 본성이 효성 및 우의가 있고, 부모를 섬김에 있어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고, 부모의 상을 당하자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초막을 짓고3년울 보냐저 가깝고 먼곳의 사람 모두가 흠모하고 칭송하였다.포상과 표창의 증서가 있다.
⑫윤하박(尹河博) : 자는 준일(遵一), 아호는 연계(連溪)오 이름난 비서관 윤조원(尹調元)의 후손이다.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난 후 장손(長孫)으로써 할머니의 상(喪)을 당하였을 때 묘소 근처에 초막을 짓고 3년간을 엄격히 지키었다. 묘소에서는 호랑이가 그를 지켜 주었고,신령스런 까치가 한 뭉치의 비단을 남겼는데 그것으로 가족을 구제 하였다.
어머니가 갑자기 병에 걸려 위험할때도 똥과 오줌을 수발하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떨어뜨려 희생시켰다. 그후 돌아가셨을 때도 시묘(侍苗) 살이 3년을 하는 동안 호랑이가 그를 지켜 주었다.
그는 평생 용하(用夏)두 글자를 계율로 삼았다. 그의 아들을 마을에서도 그의 효에 대하여 사문으로도 칭송을 하였다. 회당 윤응선(晦堂 尹膺善)이 기쁜 마음에 대한 쓴 글이 있다
⑬오진호(吳鎭鎬) : 해주(海州) 사람으로 정양공(定襄公) 오방호(吳邦祜)의 후손으로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다.
부모를 섬김에 있어 효(孝)를 하였고, 부모님께서 병(病)이 들었을 때는 계단(기도단)을 쌓아 100일 동안이나 천지신명께 기도를 하여 효험을 보았다.
사람들은 천지신명(天地神明)이 효성의 처음과 끝이 같은 것을 보고 감동한 것이라고 하여 포상한 것이라 하였다. 부모님 상(喪)을 당하자 슾름을 억제하지 못하였고, 상례와 장례를 치룸에 있어서도 예(禮)를 다하였다. 머리에쓰는 수질(首絰)과 요대를 풀지 않고 묘소의 초막에서 6년을 지냈다.
유학자(土林)들이 그를 흠모하고 칭송하였음은 물론 포상과 표창증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