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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학아카이빙

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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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堤川)은 충청북도의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동쪽은 단양군, 서쪽은 충주시, 남쪽은 경북 문경시, 북쪽은 강원 원주시·영월군과 접한다. 차령산맥(車嶺山脈)과 소백산맥(小白山脈)의 분기점 부근에 위치한 산지지역이다. 본래 고대 진한(辰韓)의 발상지로서, 4세기초에는 백제의 영토였으나 5세기중엽 고구려에 속하여 내토(奈吐)라 불렀다. 그 후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내제군(奈堤郡)으로 개칭되었고, 사열이현(沙熱伊縣)을 청풍현으로 고쳐 내제군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내제군은 통일신라의 지방제도에 따라 9개의 주 가운데서 삭주(朔州)에 속하게 되었으며 5소경 중에서는 북원경(北原京)에 포함되었다. 후삼국이 분열되어 있을 당시 제천지방은 내제(奈堤)로 칭해졌고 고려에 영속되어 있었다. 이후 940년(태조 23)에는 제주군(堤州郡)으로 개칭되었다. 985년(성종 2)에는 전반적인 지방행정구역의 체제가 수립되어 이 당시에 제천은 충주목사(忠州牧使)의 관할지역인 원주(原州)에 속해 있었다. 992년(성종 11)에는 의천(義泉)·의원(義原)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995년(성종 14) 중원도(中原道)에 속하였으며1018 년(현종 9)에 제주는 원주(原州)에 속하였고, 청풍(淸風)은 충주에 속하였다. 1106년(예종 1)에는 양광도(楊廣道)에 속하였으며 제주와 청풍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충청도'라는 명칭과 지역이 확정된
것은 조선왕조가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395년(태조 4)의 일이다.
조선의 개국으로 인해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던 시기였으므로 한양으로의
천도는 물론 지방제도의 재편이 절실히 요청되었을 것이다. 이 때에는
기존의 충주목(忠州牧)과 청주목(淸州牧)이 합쳐져 충청도를 이루었다.
≪세종지리지≫에서는 제천현의 크기와 위치를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영춘(永春)에 이르기 13리, 서쪽으로 충주에 이르기 33리, 남쪽으로
청풍에 이르기 13리, 북쪽으로 원주에 이르기 21리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1456년(세조 1년)의 기사에서는 충청도의 충주도와 청주도를 구성하는 각 고을의 이름을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 정리한 것을 볼 수 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제주를 제천이라 개칭하고 현감(縣監)을 두었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전기 제천의 행정적 경계는 "동쪽으로 강원도 영월군 경계까지 17리, 영춘면 경계까지 18리, 청풍군 경계까지 20리이고 서쪽으로 충주 경계까지 43리이며 북쪽으로 강원도 원주 경계까지 36리이고 서울까지의 거리는 391리"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 왕조실록에 나타난 몇몇 기사만으로는 제천 지역의 구성과 지리적 설정의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특정한 지역이 왕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 그 곳의 행정적 지위를 높여주는 것은 어느 왕조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조선 현종 때에는 청풍군이 청풍부로 승격되었는데 이것은 청풍이 왕비의 관향(貫鄕)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왕조실록≫상에서 제천의 행정적인 변화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