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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의림지(義林池) :
제천군의 북쪽 10리 지점 모산리(茅山里)에 있다. 저수지의 면적은 13.7
정보(町步)이다. 세종(世宗, 1418~1450)시대에 충청도 도신(道臣)
정인지(鄭麟趾)에게 명을 내려 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저수지의
주변에는 큰 소나무(老松)가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저수지의
서쪽에는 물이 넘칠 때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출구가 있는데 깍아지른
절벽이 천척(千尺 : 300m)나 된다. 이 때문에 물줄기가 폭포를 이뤄 나르는
것 같은 모양 때문에 용폭(龍瀑)이라 한다. 박연(朴淵)의
구룡(九龍)폭포와 견줄만한 것이 용폭이다.
순채·붕어
역시 의림지의 특산물이다. 그 맛은 아주 좋고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고기를
잡으면서 즐기는 사람들이 줄을 잇듯 끊이지를 않는다. 실제로
의림지는 층북 내에서는 이름난 곳이다.
지난
갑인년(甲寅年-1914) 봄에 이종진(李鍾震)이 앞장서서 현재의
저수지 모양으로 개축(改築)을 하여 수리조합(水利組合)의 관할로 편입시켰다. 관개(灌漑)하는
면적은 아주 넓다. 저수지의 동쪽 언덕에 뽀족한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곳은
옛날 우륵악사(于勒樂師)가 거문고를 탔던 곳이다. 저수지의
남쪽에는 붉은 물이 흐르는 곧은 샛강이 있고, 그
강물의 색깔이 모두 붉기 때문에 홍류간(紅流澗)이란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02) 한벽루(寒碧樓)
: 청풍고을의 객사(客舍 - 귀한 손님이 오면
머물게 하는 곳)
동쪽 큰강(大江)을
굽어보는 자리에 있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4년(1317)에 세워진 것이다. 풍혈(風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쐬기위해, 또
수혈(水穴)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프르름을 보기위해 세워진 것으로 바람의
시원함인 한(寒)과 푸르름(碧 : 맑음)에서 이름을 취한 눈각(樓閣)이다.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 선생이 짓고 쓴 편액이 있다. 고려말, 조선초기의
학자 하륜(河崙)의 자(字)는 대임(大臨),
아호는 호정(浩亭)으로 진주(晋州) 사람이다.
03)
능강구곡(綾江九曲) -
쌍벽담(雙碧潭) - 몽유담(夢遊潭) -
와운폭포(臥雲瀑布) - 관주폭포(貫珠瀑布) -
용주폭포( 珠瀑布) - 금병대(錦屛坮) -
연자탑(燕子塔) - 만당암(晩塘巖) -
취적대(翠滴臺)
※ 일곡(一曲)에서
구곡(九曲)까지 연이어 이정표가 있으며, 7리 통천(洞天이라고 부른다.
이상은
본래부터 제천군에 있었다.
04)
강선대(降仙臺) : 제천군의 서쪽 20리
지점 삼거리(三巨里)마을 뒷편에 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해 불려진 이름이다. 원래부터
저천군에 있었다.
05) 호천대(壺天臺)
: 김수흥(金壽興)·김수항(金壽恒) 형제가 함께 글을 지어 이름을
붙였다.
06) 도화동(桃花洞)
: 오도일(吳道一)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아호는
서파(西坡)로 해주(海州) 사람이다. 문과(文科)에 급제 하였고, 글씨를
쓰고 새겨놓은 명칭으로는 취적대(吹笛臺)라고 쓰여져 있다.
07)
무암사(霧岩寺) : 금수산(錦繡山)에 있다.
삼한(三韓) 시대의 고찰이며, 짙은 안개가 자욱하면 지척(咫尺)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우뚝 솟아오른 한 바위봉이 앞에 나타났다가 그름 안개가
없어지면 바위봉(峰)도 볼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무암사란 이름이 얻어진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그야말로 기묘(奇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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