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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7-0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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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환여승람] 학행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2,073)  
① 정세규(鄭世規) : 자는 군칙(君則), 아호는 동리(東里)로 동래(東來)인이다. 뢰암 정언신(賴菴 鄭彦信)의 손자로서 학문의 경지가 세상에서 흠모하는 바가 되었다. 인조(仁祖, 1623~1649)시대에 천거되어 남대(南臺)로 제수되었으며, 관직은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고, 시호는 경현(景憲)이다.

② 정보연(鄭普衍) : 자는 만창(晩昌), 아호는 태백산인(太白山人)이다. 유학에 정통한 학자 정양(鄭瀁)의 아들로서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의 제자다. 자질과 품성이 탁월하고, 지조와 뜻이 아주 높다. 학문연구에 있어 성리학의 의도 부분은 역사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으며, 우암 송시열이 쓴 묘지명과 지재 민진후(趾齋 閔鎭厚)가 쓴 비문(碑文) 있다.

③ 박수검(朴守儉) : 자는 양백(養伯), 아호는 임호(林湖)로 의흥(義興) 사람이다. 고려시대 상서(尙書) 박을규(朴乙規)의 후손이며, 우암 송시열의 제자다. 온갖 노력을 다하여 성리학연구에 대한 업적에 큰 진전이 있었다. 위편삼절(韋編三絕)을 저술하였으며, 진사통고(震史通考)와 시경 308편을 편찬하였다 또 중용연의(中庸演義)을 편수하였다.
현종(顯宗, 1659~1674)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승진함에 따라 지주사와 목사를 거쳐 필선(弼善―임금 보좌관)에 이르렀다. 이조참판(吏曹參判) 및 제학(提學)으로 추증되었으며, 의호사(義湖祠)에 배향되었다. 문집(文集―《林湖集》)을 남겼으며, 연안(延安) 사람 김선(金銑)이 쓴 행적 기록이 있다.

④ 이기홍(李箕洪) : 자는 여구(汝九), 아호는 직재(直齋)로 전주(全州) 사람이다. 충숙공(忠肅公) 이수(李睟)의 증손으로 우암 송시열의 제자이며 집의(執義)를 제수 받았다.
숙종(執義, 1674~1720) 15년(1689)에 동문수학하는 동료들과 대궐에 들어가 엎드려 상소하였다가 귀양을 갔다.(기사환국―서인과 남인의 권력쟁탈 시 서인숙청 사건) 그후 사면을 받아 연풍(延豊)으로 은퇴하여 도(道)와 의(義)를 강론하며 연마하였다. 문집(《直齋集》)을 남겼으며 삼일사(三一祠)에 배향되었다.

⑤ 권섭(權燮) : 자는 조원(調元), 아호는 옥소산인(玉所山人)으로 유학자 권상하(權尙夏)의 조카다. 숙종 15년(1689) 중전 민비(權尙夏) 폐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성규헌(成揆현)과 함께 상소문을 올리면서 투쟁했으나 얻은 바가 없었다.
우암 송시열이 숙청되어 축출당했을 시(기사환국) 안세휘(安世輝)와 더불어 상소를 올려 억울함을 진언하였다. 숙종 22년(1696) 건력교체(남인축출, 민비복위) 시기에 학당에서 상소가 빗발치는 등 판별을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논의가 한창일 때, 한림원(翰林院)의 어진 학자들과 업부를 원할히 처리하였다. 가선대부(嘉善大夫)와 동중추부사(同中樞府使)로 추증되었으며 문집(《玉所集》)을 남겼다.

⑥ 권진응(權震應) : 자는 형숙(亨叔), 아호는 산수헌(山水軒)으로 유학자 권상하(權尙夏)의 증손으로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의 제자다. 영조(英祖, 1724~1776)시대에 자의(諮議―임금의 자문역)에 제수되었다. 성담 송환기(性潭 宋煥箕)가 쓴 묘비가 있다.

⑦ 유인석(柳麟錫) : 자는 여성(汝聖), 아호는 의암(毅菴)으로 학문은 당숙인 성재 유중교의 문하에서 익혔다. 쓰러져 가는 유학의 도를 세워 사람들을 바르게 일깨우고, 본바탕을 세우기 위해 조정과 고을, 사당에 제사 지내는 올바를 형식(의식)을 본보기로 하였다. 미비한 제사 지내는 의식(형식, 올바른 방법) 2권을 저술하여 이것으로서 제사지내는 의식으로 정하였다. 또, 《소의신편 昭義新編》을 저술하였다. 고종(高宗, 1863~1907) 22년(1896)에 의병을 창의하였고, 문집(《의암집 毅菴集》)을 남겼다.

⑧ 박세화(朴世和) : 자는 연길(年吉), 아호는 의당(毅堂)으로 밀양(密陽) 사람이다. 주자(朱子)와 율곡 이이(栗谷 李珥)를 배우는 것과 학문과 법도에 있어 종주로 삼았다. 학문이 잡되지 않고, 유학 본래의 그대로 순수함으로 그의 후학들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에 곡기(穀氣)를 끊어 절명하였고, 용하영당(用夏影堂)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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