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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0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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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환여승람] 명환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2,018)  
① 이경중(李敬中): 자는 공직(公直), 아호는 단애(丹厓)로 전주(全州) 사람이다. 담양군(潭陽君) 이거의 후손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다. 선조(宣祖,1567~1608)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湖堂)의 전랑(銓郞)의 제자다. 선조(宣祖, 1567~1608)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湖堂)의 전랑(銓郞)을 역임했다. 벼슬길에 나가 어사(御史)가 되어 밀린 빚을 모두 징수하였으며, 정여립(鄭汝立)의 반란을 평정하고, 정여립을 처형한 후에 특별히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추증되었다.

② 윤조원(尹調元) : 자는 정평(正平), 아호는 율원(栗園)으로 다원(茶原) 사람이다. 청백리(淸白吏) 윤석보(尹碩輔)의 현손(玄孫)이다. 문장(글)의 실력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선조시대 문과에 급제하여 감사(監司)를 거쳐 참판(參判)에 이르렀다. 조정이 혼란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백암동(白巖洞)에서 지극한 효(孝)를 다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조정에서 여러번 출사를 명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③ 유숙(柳潚) : 자는 연숙(緣叔), 아호는 취흘(醉吃)로 고흥(高興) 사람이다. 충정공 유탁(柳濯)의 후손이다. 인조(仁祖, 1623~1649)시대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湖堂) 응교(應敎)를 역임하였고, 벼슬은 제학(提學)에 이르렀다. 이백주(李白洲) 및 여러 관료들과 함께 난세(亂世)를 당하여 윤리도덕을 홀대하는 무리들을 척결하고자 하는 내용의 상소를 하였고, 이월사(李月沙)와 더불어 나라의 기강을 어그러지게 한 자들의 죄를 문책 하라고도 상소를 올렸다. 가죽을 씌운 난정첩(蘭亭帖)이 있고, 문집(文集)이 있으며 우의정 이휘(李徽)가 쓴 비(碑)가 있다.

④ 강유(姜瑜) : 자는 공헌(公獻), 아호는 상곡(尙谷)으로 진주(晋州) 사람이다. 통정 강회백 (通亭 姜淮伯)의 후손이다. 인조(仁祖, 1623~1649)시대 문과에 급제하여 은대(銀臺一 상소문 출납부서)를 거쳐 호란(胡亂) 때 임금을 보호하며 종군하였다. 강도(江都一 강화)에 주둔할 시 친화정책(청나라)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효종(孝宗, 1649~1659) 시대에는 송시열과 함께 북벌(北伐)을 모의하였다. 송시열의 천거로 장수(將帥)가 되었고, 재주가 인정되어 여러번 승진하여 병마사(兵馬使)가 되었다.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목(忠穆)으로 남당서원(南塘書院)에 배향되었다. 정암 민우수(貞菴 閔遇洙)가 쓴 비(碑)가 있다.

⑤ 권영(權瑩) : 자는 중온(仲溫), 아호는 청은(淸慇)으로 학문과 덕행의 조화로 존경을 받았다. 숙종(肅宗, 1674~1720) 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吏曹參議)가 되었으며, 벼슬은 대사간(大司諫)에 이르렀다. 영정이 있으며, 잘못된 죄인을 새롭게 재심한 내용을 쓴 유고(遺稿)가 있다.

⑥ 허필(許珌) : 자는 계량(季良)으로 양천(陽川) 사람이다. 초당 허엽(草堂 許曄)의 후손이다. 자질과 품성이 순박하고 진실하며, 어머님을 봉양하고자 몸소 농사를 짓자 모두가 훌륭하다고 하였다. 숙종(肅宗, 1674~1720) 시대에 충사하여 덕천(德川) 군수가 되었으나 세상의 도(道)가 날로 피폐하는 것을 보고 사임한 후 고향으로 은퇴하였다. 어머님을 정성껏 봉양하여 왕가(王家)에서 까지 그를 모범으로 삼았다. 원로가 되어 폐하(61살~70살이 될 때까지)를 모시는 등 동중추부사( 同中樞府使)로 있었다.

⑦ 이위(李瑋): 자는 백온(伯溫), 아호는 두천(斗川)으로 전주(全州) 사람이다. 익양군(益陽君  ) 이회(李懷)의 후손으로 김농암(金農巖)의 제자다. 품성이 효성과 우의, 충성과 이해에 깊음이 있고, 정직함은 물론 폭이 넓고, 여유스러움이 있다. 영조(英祖, 1724~1776) 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시강원(侍講院) 의 문학(文學) 이 되었고 유고집(遺稿集)이 있다.

⑧ 이광세(李匡世) : 자는 제이(濟而) 아호는 우헌(愚軒)으로 전주인(全州人)이다. 석문 이경직(石門 李景稷)의 손자다. 영조(英祖, 1724~1776) 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판윤(漢城判尹), 안악(安岳) 지방장관을 거쳐 얼마 지나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임금이 어리석을 우(愚)를 아호로 내려 주었고 좌의정 김병시(金炳始) 가 쓴 행장 기록이 있다.

⑨ 이제담(李穧聃) : 자는 대수(代搜), 아호는 파서(坡西)로 죽은 후 벼슬을 제수받은 이유순(李幼淳)의 후손이다. 정조(正祖, 1776~1800) 시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 여러차례 승진, 지방장관이 되었고, 관직은 승지(承旨) 까지 이르렀다. 관직을 은퇴한 후 제천 평장동(平章洞)에서 살았다.

⑩ 한진계(韓稹棨) : 자는 대임(大臨), 아호는 학남(鶴南) 으로 청주(淸州) 사람이다. 구암 한백겸(久庵 韓百謙)의 후손이다. 문예(文藝) 에 뛰어나 6살에 시를 지었다.
그의 6세시 시(詩)를 보면,

風吹山不動 바람이 불어도 산은 움직이지 않고,
天高鳥飛低 하늘은 높은데도 새는 낮게 난다.

라고 지었고, 당대에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헌종(憲宗, 1834~1849) 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직책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지방장관을 거쳐 승지(承旨)가 되었다. 문집에는 <서유기 西遊記>⦁<남정기 南征己>⦁<북정기 北征己>⦁<동도만록 東度曼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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