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06 15:08
[조선환여승람] 명관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2,066)
① 윤홍리(尹弘离) : 자는 거경(巨卿), 아호는 소와(笑窩)로 파평(坡平) 사람이다. 뇌재 광령(憹齋 光齡)의 후손이다. 성품과 이해의 폭이 넓고도 크다. 효행과 우의가 세상에서 으뜸이였고, 문장은 우러러 보기에 충분하고 대화와 논지는 옳은 이치가 넘쳤다.
숙종(肅宗, 1674~1720)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랑(正郎)이 되었으며, 오륜(五倫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에 밝아 주군(州郡) 모두에 거사비(去思碑)가 있을 정도였다. 우암 송시열과 함께 정릉(貞陵) 복구에 대한 상소를 올렸으며, 문집을 남겼다.
② 정일환(鄭日煥) : 자는 겸지(兼之), 아호는 창주(滄州)로 연일(延日) 사람이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후손이며, 음사로 가선대부(嘉善大夫) 작위를 받았다. 지방장관을 여러번 역임하면서 청렴결백하게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영조(英祖, 1724~1776)시대에 시파(時派, 南人)와 벽파(僻派)의 논쟁시 벽파의 영수로 있었다.
문집을 남겼으며, 파산 윤응선(坡山 윤응선(尹膺善))이 쓴 그의 행적 기록이 있다.
③ 이직현(李稷鉉) : 자는 화좌(華佐)로 용인(龍人) 사람이다. 아은 이정악(啞隱 李挺岳)의 후손이다. 헌종(憲宗, 1834~1849)시대에 부모의 덕으로 공조참판(工曹參判)이 되었으며, 특별승진 및 여러차례 관직에 올라갔다. 주군(州郡) 모두에 이루워 놓은 업적이 있었다.
부여(扶餘) 영강정(暎江亭)에 치적비가 세워져 있다. 청풍군수로 재직시 팔영루(八詠樓)를 세웠고, 한벽루(寒碧樓)를 중수하였다. 그의 업적을 되뇌임은 항상 있어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