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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7-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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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제천 의림지의 인문지리학(1)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1,723)  
2) 1980년대~2016년

(1)1980~1990년대

1980년대로 접어든 이후에도 의림지 연구는 여전히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였다. 그나마 "한국산 빙어의 지리적 형태변이의 대하여"라는 논문이 제출되면서, 비교의 관점에서 의림지산 빙어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물론 이 논문은 의림지산 빙어를 대상으로 한 단독 연구는 아니지만, 당시 기준으로 "한강산과 의림지산이 각각 근친적 유녹관계로 나타났다."는 분석을 포함해서 상당히 복합적인 정보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1920년대부터 인공으로 서식된 의림지 빙어는 타지의 빙어와 맛/빛깔이 달라 공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80년대 초반에 작성된 "신라시대의 댐: 의림지"라는 잡지류의 글도 참고할 만하다. 특히 의림지 제방이 내심벽과 대수면벽으로 이뤄진 이중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순채와 빙어에 얽힌 이면의 정보도 나름의 자료적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 반면에 "수련과에 속하는 다년생 수초"인 순채를 대상으로 한 본격적인 연구는 지금에 이르도록 이뤄지질 못했다. 또한 운양 김윤식이 <의림지>라는 시작의 세주를 빌려서, "순채와 붕어는 지중의 명산이다."고 설명한 바가 있으나, 의림지의 양대 명산물이었던 붕어를 대상으로 한 생물학적 연구도 끝내 수행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한편 1990년대에 진척된 의림지의 연구 경향 또한 80년대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나마 권순궁이 "제천지역의 구비전승과 그 역사적 의미"라는 성과를 내놓음으로써, 이후 숱하게 펼쳐진 의림지 전설/설화 논의의 이정표를 제시한 성과가 돋보이는 정도다. 이후 이와 유사한 논의가 "대한토목학회지"를 통해서 1,2쪽 분량의 매우 짧은 글들이 게재된 바가 있고, 이러한 경향은 안상진 외의 "의림지의 유래와 전설"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단, 소개한 3인의 글들은 의림지 연구사의 명맥을 잇는 심층적인 연구 성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던 차에 의림지 구역을 대상으로 하여 개발과 보전의 문제를 전격 제기한 권태호 외의 논문이 선보였다. 수용 능력이라는 논리에 입각, 환경의 편에서 도시 개발을 겅계해 보인 이 글은 의림지를 황금알을 낳는 매혹적인 개발의 장이자, 숱한 관광객을 흡입하는 전시 공간으로 인식하는 듯한 제천시가 참고해야 할 성과로 간주한다. 이와 동시에 의림지를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석사학위논문인 "지방도시 발전자원으로서의 역사/문화공간: 제천시 의림지 구역을 중심으로"가 제출되었는데, 이 글은 권태호 외의 문제의식을 계승한 성과로 분석된다. 또한 두 번째 석사학위논문이 윤현택의 "의림지 환경설계"에서는 의림지의 전통적 가치의 여러 측면을 정리해 보인 뒤에, 역사적/생태적 공간으로서의 교육적 의미를 확인하고, 지역 발전과 활성화를 위한 환경설계를 제안하였다. 이처럼 연차적으로 석사학위논문이 제출된 이면에는, 오랜 역사성과 개발욕구가 중첩된 의림지가 직면한 현주소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던 차에 구완회는 "제천 의림지에 관한 역사적 검토"라는 제하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병도의 삼한시대 축조설 비판으로 포문을 연 이글은 의림지에 대한 첫 번째 역사학적 탐구라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사적 의의가 인정된다. 또한 이 논문은 익년에 발간된 종합 보고서인 "의림지 정밀기초조사" 가운데 "의림지 역사분야 기초조사"에 양기석/강민식의 글과 함께 공동으로 수록되어 있는 상태다. 즉, 적시한 3인의 연구 성과는 1999년 8월 24일~1999년 12월 16일까지 진행된 의림지 정밀기초조사가 맺은 결실의 한 파트였던 것이다. 1999년 12월 20일~2000년 3월 31일에 이르기까지 보완조사 및 식생분야조사/나무 수령 및 나이테 분석 등의 추가조사가 이뤄진 의림지 정밀기초조사 작업과 그 결과를 담은 조사보고서는 의림지 연구사에서 일대 계기적 사건에 해당하는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 조사보고서가 제출된 이후로, 그간 간혈적인 연구 추이를 보여주었던 연구사의 답보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었을뿐더러, 의림지 연구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였기 때문이다.

(2) 2000~2016년

1999년 8월에 시작해서 2000년 3월에 종료된 의림지 정밀기초조사의 결과를 정리한 "의림지 정밀기초조사"는 연구사의 장도에 질적/양적 두 측면에서 획기적인 계기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이 조사보고서는 이병도가 주장한 삼한시대 시축설을 고고/지지/생물/역사학 네 분야에서 재검증하는 결과로 이어짐과 동시에, 또한 기존 역사학 외의 분야인 자연과학/공학 방면의 연구자들로 하여금 의림지 연구의 장으로 유인케 하는 직접적인 계기로도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매우 복합적인 논의 양상을 연출하기 시작한 연구사적 추이란, 2000년에서 시작해서 의림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던 2017년 당시까지의 특징적인 경향성이기도 했다. 일단, 이 지점에서 적기한 연구사적 추이의 원천적 시발점에 해당하는 이병도의 삼한시대 시축설에 대한 학계의 비판적인 문제 제기의 양상을 차례대로 간추려서 소개하기로 한다. 이병도가 수행한 고대사 연구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은 이도학의 "이병도 한국고대사 연구의 '실증성'검증"이라는 장문의 논문을 위시해서 다양한 논조로 제기되었으나, 지면상의 사정으로 일일이 다 소개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의림지라는 공간에 한정된 반론성 글들을 소개하자면 앞서 언급한 구완회의 논문이 첫 포문을 연 이래로, 양기석과 성정용 및 김재호등과 같은 연구자들의 성과가 단연 눈길을 끈다. 특히 양기석의 경우, 이병도에 의한 삼한시대 시촉설이 관련지명의 언어학적 해석에 근거하여 유추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제기하였음이 주목된다. 이러한 시각은 이병도가 즐겨 채택하였던
역사지리비정의 문제점이 과도한 음상사에 의존한 비교/확정에 있다는 후속 연구보다 선행된 문제 의식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병도가 제창한 삼한시대 의림지 축조설을 향한 역사학계의 연쇄적인 비판은 논리적 설득력을 발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과학이라는 개별 학문의 고유한 특성상 실증성을 반영한 성과를 도출하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실증적 내용을 대폭 보강한 "의림지 정밀기 초조사"의 고고/지질/생물학적 연구 조사는 대단히중요한연구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기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가 2012년도의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2013년까지 의림지 제방부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된 것도, 2009~2010년 연간에 걸쳐 진행된 두 차례의 학술대회에서 체계적인 고고학적 학술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된 데에 따른 것이었다. 기실 의림지에 대한 연구가 학술대회나 학술세시만와 연계되어 진행되어 온것은 연구사의 뚜렷한 특징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테면 2009년 11월에 '의림지의 탄생 배경과 그 역사성'이라는 제하의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된 이면에는, "의림지 정밀기초조사"로 대변되는 지지/고고/역사/식생/제림 등의 분야를 대상으로 한 충북대박물관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팀이 그간 진행해 온 공동의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마무리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 조사보고서는 1956년에 이병도가 삼한시대 시축설을 제기한 이래로, 가장 종합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연구 조사를 동시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의림지 연구사의 질적 전환을 예고한 사건이었다. 실제 차후인 2016년까지 전개된 의림지 연구는 문학/문화학 분야와 여타의 한두 사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지질/고고/역사/식생/제림 분야의 범위 내에서 이뤄진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국지질자원연구원팀의 김주용 외가 수행한 의림지 제방 2곳 및 지내의 호저 퇴적층 3개소에 대한 시추 조사 결과는 세인의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제방의 축조 연대를 퇴적물 시료를 분석한 자료에 의거한 결과, 약 1900~1800년 전인 AD 100년 전후라는 연대 측정값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 연대치는 고고/지질학적 차원에서 이병도가 주장한 삼한시대 시축설을 추인해 주는결과로이어졌고, 곧장 언론의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뒤이어 "제천 의림지 시/발굴조사보고서"를 총체적으로 마무리한 박지훈 또한 BC 390년에서 AD 410년에 이르는 제방의 연대 분포 결과를 종합해서 초축 시기를 삼한시대로 추산했다. 이에 앞서 강상준 외가 추진한 고생물학 분야의 연구에서도 문화 편년으로 볼 때 의림지가 청동기~철기시대 및 고대사회 초깅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 사실이 있다. 이상의 연구 결과들은 "의림지 정밀 기초조사"의 내용을 계승/발전시킨것이기에, 2000년도 이후로 전개된 연구사의 이색적인 흐름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또한 기존 역사학계에 이어 고고/지질/고생물학/자연지리학 분야까지 가세한 의림지 시축 담론의 새로운 전개 양상을 선보인 사례들로 평가된다. 그 여장선에서 의림지의 축제 무제를 또 다른 각도에서 다뤘던 정인구와 김장수의 선행 연구가 제춛된 이래로, 지화학/고생물학/문화사학/ 분야 및비교/교차론적 관점에 의거한 공학 분야의 성과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서 동시다발적인 연구가 수행되는 추이가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이 무렵에 이홍종은 의림지에 대한 기초적인 고지형을 분석하여 살펴본 결과, 현재의 동/서쪽의 하천 외에도 충적지 중앙부를 관통하다가 매몰된 구하도의 존재를 밝혀내기도 했다. 이렇듯 의림지정밀기초조사를 계기로 하여 본격적으로 진행된 지화학/고생물학/자연지리학 분야의 연구는 초축 시 의림지 권역의 기후/식생 환경에 대한 탐구와 함께, 인간의 자취에 관한 추적을 아울러 시도했다는 점에서, 시축 담론의 외연을 보다 확장시킨 연구사적 의의가 확인된다. 다만, 이미 발표한 내용들이 중복적으로 취급되곤 했던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한편 김진만 외가 울산의 약사동 제방을 대상으로 한 연구 조사를 통해서 제시한 다섯 공정에 이르는 축제 단계를 설정해 보인 것은, 여타의 고대 수리 시설을 포함해서 의림지 시축 담론의 공학적 얼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성과로 간주된다. 이러한 추이와 병행해서 문학/민속학/문화학 방면의 연구가 드문드문 진행된 가운데, 의림지라는 대형 제언이 수행한 수리적 기능에 주목한 수리학 방면의 연구 성과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만 문학/민속학/문화학 분야의 연구는 개별과학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 특정한 주제 사안을 통해서 표출되었다기보다는, 공히 영역이 상호 혼재/융합된 문화학적 논의로 귀착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의림지 전래의 구전설화들을 소개하면서, 각기 농경문화적 세계관과 민중 지향적 문화지리를 노정해 보인 것으로 분석한 권순긍/서해숙의 성과가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또한 의림지를 호지의 전형적인 사례로 규정하는 가운데,
18세기를 전후로 한 무렵에 꽃피운 누정문화의 특징적 양상들을 규명하고, 또한 정자와 결속된 구전설화들을 분석해 보인 김종수의 논의도 같은 문화학적인 범주에 포함된다. 그런데 의림지에는 악성 우륵의 행적과 관련된 자연적/역사적 상관물이 존치되어 있는 상태지만, 이제껏 의림지와 우륵을 직접 결부시킨 실증적인 차원에서의 논의는 이뤄지질 못했다. 대신에 우륵의 탄생지로알려진 청풍 성열현에 관한 연구는 제천의 향토사가인 류금열의 논문 외에도, 다수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있는 상태다. 그런가 하면 주로 조선조 사대부들로 이뤄진 고전문학 작가들의 작품에 수록된 의림지와 관련된 내용들을 문학적으로 다 논의 가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한 점도 대단히 주목된다. 예컨대 제천 출신인의 문인 이상필을 소개한 최도식의 논의와 함께, 역시 이 지역 출신인 김이만의 문집 "학고집"속의 두 죽품을 소개한 권경록의 논문은 지목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조 지식인들이 남긴 시문집에 수록된 의림지를 호출해 내는 식의 흐름은, 2017년 이후에는 더욱 뚜렷한 경향성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2012년 이래로 출현한 문학 방면의 연구 성과들은 고전문학의 지평에서 의림지 논의를 새롭게 수놓은 결과로 이어진 장점이 있는 반면에, 공히 의림지 수리사와 유관한 관찰 포인트가 전혀 설정되지 않는 특징도 포착되기도 한다. 한편 수리학 방면의 연구는 애초 저수지로 출발한 의림지의 원천적인 기능에 주목한 것으로, 시축 담론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농업사적/수리사적 의의를 담지하고 있다. 자연히 수리학 방면의 의론은 의림지의 관개/수리 시설과 못물의 혜택을 받는 몽리 면적, 그리고 배수구와 수문 및 수로의 변천 과정과 같은 복합적인 담론의 구조를 취하게 된다. 앞서 소개한 충북권의 역사학자들 대부분이 소개한 주요 연구 성과들을 통해서 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논구한 바가 있으나, 지면상 다시 해당 논문 속의 그것을 호출해 내지는 않겟다. 그 대신에 오롯이 수리학에 천착한 연구 성과들만 특정해서 소개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예컨대 전문성은 다소 떨어지나 "신라시대의 수리시설사"를 필두로 해서, 의림지 연구에 타산지석의 역할을 하는 일본 협산지의 수리 유적을 소개한 고야마다 고이치의 연구라든가, 혹은 비교의 관점에서 고대 수리시설의 특징과 의미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노중국의 성과등을 우선적으로 지목 할 수 있다. 다만, 이상에서 저기한 3인의 연구에서 의림지의 수리 체계를 다룬 내용은 극히 짧은 분량에 불과하기에, 의림지 관개/수리 시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의림지 관개/수리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인 이른바 천지-자지형 수리체계에 관한 의론은 곽종철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곽종철은 "한국 고대의 수전농업과 수리시설"을 통해서, "제천 의림지와 그 남쪽의 혈지 간에 소위 친지-자지 관계가 성립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견해를 피력했고, 이로 인해 그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의림지의 수리 체계/구조를 둘러싼 논의에 활기를 불어넣게 되었다. 이에 김재호는 "제천 의림지의 수리사적 특징과 의의"를 통해서 어미 못에 대해서 아들 못에 해당하는 자지가 대야지제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종수는 "15~19세기 의림지의 관개/수리시설 연구"라는장문의 글에서 친지-자지-손지형 수리체계의 연원과 전개 과정을 통사적으로 규명해 보임과 동시에, 또한 수문 시설을 둘러싼 논의를 부분적으로 수행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이제 의림지 관개/수리사 연구에서 수문 시설에 관한 완전한 해명 작업만을 미제로 남겨두게 되었다. 한편 이에 앞서 한국하천협회 소속의 김현준 외도 고대 수리시설인 의림지의 역사를 취급하였으나, 그간의 연구 성과를 요약/정리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상에서 소개한 여러 부류의 연구 성과들과 병행해서, 2012년 이후로는 수질/생태환경을 주제로 한 새로운 추세가 형성된 정황도 크게 눈길을 끌게 한다. 그 출발점은 충북 도내의 의림지/명암지/오창의 호수공원 세 곳을 대상으로 하여 수질의 특성을 살핀 충청북도보건환경연구원의 연구 조사였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의림지의 화학적 산소요구량은 4등급에 해당하는 '보통'으로 나타났고, 영양상태는 '중영양호' 상태로 판정되는 등 차츰 주의를 요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음이 드러났다. 4년 뒤에 실시된 이원호 외의 연구 조사도 이와 유사한 결론을 내렸는데, 점차 악화되는 의림지의 수질/생태 문제에 제천시 당국은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의림지의 수질 문제는 한때 순채의 개체 수가 급감한 적이 있었던 18세기로까지 환원될 정도로 매우 연원이 깊다는 김종수의 "학고 김이만의 18세기 의림지 생태환경 묘사"를 상기 시키는 선에서, 이 항목의 논의를 서둘러 매듭짓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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