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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제천문화원 마을기행 입니다.

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2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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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양읍] 옥전리[玉田里]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3,049)  
11.옥전리[玉田里]

옥전리 마을 뒤에는 구학산이 위치해 있으며, 마을 한 가운데는 노목계곡이 있다. 본래 제천군 근우면 지역으로서, 옥토 같은 밭이 많다 하여 ‘옥밭’ 또는 ‘옥전(玉田)’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노목리(老木里)을 병합하여 옥전리라 하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승격에 따라 제원군 봉양면 옥전리로 되었다가, 1991년 1월 1일 제천시 봉양면이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시군통합과 동시에 봉양면이 읍으로 승격하며 제천시 봉양읍 옥전리가 되었다. 특산물로는 장뇌산삼, 표고버섯, 호박고지 등이 있다.

◎ 옥전리 지명유래

 · 구학산(九鶴山) : 구학산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인접해 있는 산.

 구학산(九鶴山)은 『여지도서』에 “현에서 서쪽으로 50리에 있다. 산의 정상에는 월영당(月迎堂)이 있으며, 월영당 아래 샘이 있는데,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구륵산의 동쪽 줄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 노목(老木) : 노쟁이 서북쪽에 있는 마을.
 · 노장(老長) → 노쟁이.
 · 노쟁이[노장, 노정] : 탑골 서북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 노정(老亭) → 노쟁이.
 · 대곡(垈谷) → 댓골.
 · 댓골[대곡, 죽동] : 탑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 대나무가 많았음.
 · 벌대암1 : 벌대암이 있는 마을.
 · 벌대암2 : 옥밭 동쪽 냇가에 있는 바위. 움푹하게 깊이 패인 곳이 되어 자루를 대어 놓으면 물고기 떼들이 몰려 다니다가 빠지게 되어 많은 물고기를 잡음.
 · 벌대암 폭포 : 벌대암 위에 있는 폭포. 높이 2m.
 · 보덕사(寶德寺) : 옥전리에 있는 절. 전에 칠층탑이 있었는데, 1928년에 대구(大邱)로 옮겼음.
 · 옥전교(玉田橋) : 옥밭 서쪽에 있는 다리. 길이 5m. 1951년에 놓았음.
 · 좌수골[좌수동] : 노목리 서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좌수를 지낸 사람이 살았다고 함.
 · 죽동(竹洞) → 댓골.
 · 탑거리 → 탑골.
 · 탑골[탑동, 탑거리, 탑평] : 옥밭 서쪽에 있는 마을. 돌탑이 있었음.
 · 탑동(塔洞) → 탑골.
 · 탑평(塔坪) → 탑골.
 · 학수골 : 옥전리에 있는 골짜기.
 · 황철암(黃鐵岩) : 노쟁이 동쪽에 있는 마을. 황철이 났었다고 함.
 · 황학사(黃鶴寺) : 학수골에 있는 절.

◎ 옥전리 문화유산

 · 송화사(松華寺)
 대한불교 불입종(佛入宗, 1965년 태허법사가 창건한 종단)의 총본산 사찰이다. 1985년부터 2008년 현재까지 불입종 총무원장을 맡고 있는 경암스님이 1973년 제천시 봉양읍 팔송리에 초암(草庵)을 짓고 포교를 시작했다. 1993년 현 위치인 노목계곡 옆으로 이전하여 약 6만 6,115m2의 부지에 중창불사(重創佛事)를 하였다. 대웅전 · 범종각 · 적묵당 · 영산전 · 성보전 · 일승문 등을 건립하고, 석가모니진신사리탑 · 부도전 · 다보탑 등을 조성하였다. 1998년 불입종 총무원 직할사찰로 지정되었고, 2006년 7월 총본산으로 승격되었다.
 부설기관으로 법화유치원이 있다. 송화사의 신도 수는 20,000명이다. 제천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웅전과 범종, 성보전, 영산전 등이 있으며, 대웅전 글씨는 조선시대 명필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재각하였다. 현 주지이신 김경암(金鏡岩)스님은 불입종 총무원장을 겸하고 있으며, 불입종 충본산으로 종단 소식지인 계간지 『불입(佛入)』을 20여 년 째 간행하고 있다.

⦁송화사 석조나한상(石造羅漢像)
송화사에는 『묘법연화경』 (목판본, 1527년작), 『지장보살본원경』 (목판본, 경상도 함양 벽송사 판, 1797년 작)을 비롯한 다수의 경전류가 보관되어 있는 경상도 함양 벽송사 판, 1797년 작)을 비롯한 다수의 경전류가 보관되어 있는데 이들은 최근에 구입한 것들이라고 한다. 또한 성보전에는 여러 불교국가들의 다양한 불교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석조나한상은 성보전에 보관 중인 상으로 원래 봉안되었던 위치는 알 수 없다. 목이 부러진 것을 붙였으며 마멸이 매우 심해서 세부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대좌나 광배는 없다. 불안(佛眼)은 동그란 편이고 이목구비는 마멸로 인해 알아볼 수 없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견으로 옷을 입고 옷주름은 매우 형식적이다. 두 손을 아래위로 포개어 마치 지권인인 듯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한상의 실측치는 총높이 46cm, 무릎폭 30cm, 머리 폭 12.5cm, 머리 높이 14.3cm이다.

⦁탑곡사지(塔谷寺址)
 사역지 전반에서 많은 기와편과 백자편, 토기편들이 수습되는데, 수습된 태토가 정제되어 있고 태선문 등 고려시대의 기와 편들이 많이 보이므로 고려시대에 사찰이 창건되어 조선시대까지 법등이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와 편들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서 규모가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수습기와 편 중에는 명문이 적힌 것도 있지만 사찰명이 각자(刻字)된 예는 없다. 마을 주민인 김군문 할아버지 증언에 의하면 이 사지에 있던 사찰의 명칭이 ‘진적사’였다고 한다. 한편 사역 근처에서 2기의 석재를 찾았는데 경작지 한복판에 놓인 최대길이 45cm 크기의 오각형 석재는 현재 놓여 있는 자리가 일제시대 때 도난당한 석탑이 있던 자리라고 마을사람들이 전한다. 특히 이 석재의 윗면에는 지름 7.5cm의 홈이 파여 있는데 놓여 있는 위치나 형태로 보아 석탑과 관련된 석재로 보여 진다. 다른 하나의 석재는 현재 사지 남쪽에 있는 민가의 외양간 앞에 놓여 있는데, 최대길이 60cm 크기로 삼각형 모양이며 전면을 매끈하게 다듬었다. 가운데에는 지름 30cm, 깊30cm의 홈이 파여 있다.

◎ 옥전리 이야기

⦁며느리소의 유래
 옛날에 옥전리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아주 나쁜 집이 있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하는 모든 것이 눈에 거슬렸다.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의 입에서는 잔소리가 자주 튀어 나왔다. 며느리는 세상에서 자기보다 더 심한 시집살이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고부(姑婦)간의 이런 소문은 동네에 퍼졌다. 며느리는 이런 것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늘 입버릇처럼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하루는 집안 식구들이 벗어놓은 옷을 한 보따리 안고 빨래를 하러 나섰다. 가까이에 있는 냇가를 지나 늪으로 갔다. 물가에는 뾰족하게 마치 촛대처럼 생긴 바위가 서 있다. 며느리는 빨래감을 내려놓고 하염없이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재미를 모르는 시집살이가 새삼 서러워졌다. 한참을 그렇게 서서 눈물을 흘리던 며느리는 촛대바위로 빨래감을 옮겨 놓고 그 옆에 신고 있던 짚신을 벗어 논 다음에 슬피 세 번 곡을 하더니 몸을 물속으로 던졌다.
 시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며느리를 찾아 나섰다가 늪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동네 사람들은 그 늪을 ‘며느리소’라 부르게 됐고, 촛대바위에 올라가 곡을 세 번하고 물속에 몸을 던지면 비록 물이 깊지는 않지만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고 싶거든 며느리소에 가서 촛대바위에 올라 곡(哭)을 세 번 하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구학산의 유래
 학 모양으로 생긴 아홉 개의 산이 떨어져 나가 인제로 갔다고 해서 구학산이라고 한다.

조사자 : 요 앞산 구학산이라 그러잖아요?
이원섭 : 응.
조사자 : 왜 구학산이라 그러는지 그런 얘기는 있나요?
이원섭 : 학이 거기서 아홉(9)이지 그 쪽 구학산에서. 학이, 학채가, 학이 아니고 학채가 한이.
조사자 : 학채?
이원섭 : 산이 학모양 된 산이 아홉(9)이 떨어져 나갔다고 그래가주 구학산.
조사자 : 아, 아홉(9)개가 떨어져 나갔다구요?
이원섭 : 예, 산.
조사자 : 떨어져 나가서 어디로 갔습니까?
이원섭 : 그거 인제 산주령을 타고 가서 인제 어디 가서 인제 산, 학채가 돼 있으면 거 묘자리가 좋다. 인제 그래가지고. 아홉이 떨어져 나갔다고 그래가지고선 구학산이지.
조사자 : 아 하개, 그 학채가 되는게 아홉(9)개가 이렇게 이렇게 주변으로 있겠네요 그러면은. 그래서 구학산.

⦁구학산의 유래
 옛날에 이 곳 마을의 어느 대가집에 초상이 나서 명당이라고 알려진 산 정상 바로 아래를 파자 그 속에서 학 아홉 마리가 날아올랐는데, 이 때 날아간 학들이 머문 곳에 학(학)자가 들어간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곧 선학, 방학, 황학, 학산, 운학 등이 이러한 지명이며, 이후로 마을 이름을 구학리라 하였고, 산 이름을 구학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옥전리 마을신앙 - 산신제와 오릿대 제사

⦁제당의 명칭과 형태
옥전1리와 2리로 나뉜 옥전리에서 동제는 옥전2리인 노목마을만 지내고 있다. 옥전2리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첫 1일과 칠월 첫 1일 두 차례 걸쳐 풍년과 마을평안 등을 목적으로 산제당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제의의 대상은 구학 산신령이다. 산제당은 별도의 당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따라 흐르는 구학산 계곡 개울가에 높이 2m, 넓이 4m정도의 축대를 쌓아 놓았으며, 뒤편 우측에 있는 단풍나무에 한지를 묶어 놓았다. 산제당으로 오르기 15m정도 되는 곳에 금줄을 쳐 놓았다.
 이 산신제가 끝나면 산을 내려와 마을 어귀에 있는 ‘오릿대’라 불리는 솟대에 제사를 지낸다. 노목 오릿대는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우측에 세워져 있다. 높이는 약 5m 정도 된다. 현재는 흥국사라는 사찰이 있는 그 일대에 예전에는 큰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서 당산나무 옆에 서낭당을 두기도 했다. 그래서 당숲이라고 부르며 그 곳에서도 제사를 지냈다. 그 자리에 사찰이 들어서면서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오릿대를 세웠다. 오릿대가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순간 재해로 인해 없어져 제사를 지내지 않는 동안 계속 안좋은 일이 생기다보니 다시 세웠다고 한다. 현재의 오릿대는 새의 모습을 한 윗부분은 나무로 되어 있으나 그 받침인 기존 뼈대는 쇠 파이프로 되어 있다. 오릿대가 나무로 되어 있다 보니 비가 많이 올 경우 썩기도 하고, 오릿대 옆에 전봇대가 있는데 전기꾼들이 전기를 고치면서 오릿대의 나무뼈대를 작구 건드려 망가뜨리다 보니 처음엔 나무로 만들었던 오릿대를 아예 쇠파이프로 바꾸게 되었다.

⦁산신제의 준비
 산신제에서는 제관 1명과 축관 1명, 제물을 담당하는 집인 ‘도가’를 선정한다. 예전에는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정초가 되면 생기복덕이 맞고, 부정하지 않은 사람을 선정해 제관을 뽑았다. 그러다 보니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이 마땅치 않아 하는 사람만 계속 담당하게 되어 현재는 집집이 돌아가면서 제관과 도가를 담당한다. 이때도 부정한 사람들은 제외되며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는 산신제에 참석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제관은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 서낭신께 제를 올려야 하므로 선출된 시기부터 금기를 지킨다. 제관으로 선출되면 산제당에 금줄을 친다. 또한 제관은 몸을 깨끗이 하고, 또한 불경한 일을 보지 않기 위해 마음가짐을 깨끗이 한다. 이러한 금기는 제관이 스스로 지킨다. 제사를 지낼 때는 제관 한사람과 마을주민들 가운데 나이가 많거나, 생기가 있는 사람들이 함께 술을 올리고, 소지를 올린다.
 산신제를 지내는 데 드는 비용은 10만 원 내외이며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충당한다. 예전에는 제물을 마을이장이 장을 봐서 갖다 주면 도가집에서 음식을 준비했으나, 현재는 도가를 맡은 집에서 직접 시내에 나가 깨끗한 것으로 장을 봐서 정성스레 장만한다. 전엔 쌀도 마을기금으로 샀지만 지금은 도가집에서 알아서 준비한다. 음식을 준비할 때는 도가에서 삼일 정도 정성을 들여 준비하는데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준비기간 동안 매일 깨끗하게 목욕하며 준비한다. 음식을 만들 때는 아주 절친한 사람이나 동네 사람 한 서너 명이 도와준다.

 “정성껏 해죠 뭐. 깨끗하게 씨구 정성껏 인제 하구... 또 인제 동네에서두 다 그 정성을 모아구주구 깨끗하게 하고... 인제 부정한 사람은 안 허구 챙견 안 하구 인제 깨끗하게 정성을 들이가주구... 인제 지낼제는 음식 그 쭈구려쩨 안가여 깨끗하게 정성 드리구 모욕두 인제 날마당 해구 매칠까지 그렇게 하구선 추려이래 놔서 쭈고 그럴 제는 번, 돌아오는 번 하구 또 누가하믄 뭐 아주 절친한 사람이나 이런사람 한 서너이 거 옆에가서 같이 해주구 (웃음)해가 저 한 열두시 되믄 인제 산에 올러가서 지내지요. 장을 인제 돼지머리, 뭐 막걸리나 뭐 이런거 하구 그래가주 인제 과일하고 뭐 이렇게서 해서 깨끗하게 해가지구 지내여. 그렇게 하구 인저 지내구 내려와서 인제 거기 또 놀러가는 사람들 뭐 대충 줌 노나먹구 그 이튿날 인제 다 노나먹구 뭐 이래여. 방송해가지구...”
 예전에는 산신제를 지낼 때 쌀 3되 3흡으로 백설기를 했다. 현재는 풍족하게 하느라고 분량에 상관없이 한 시루 수북하게 찐다. 산신제 제물은 간소한 편이다. 백설기 외의 제물은 제주(제주)와 밤, 대추, 포, 사과, 배, 돼지머리를 사용한다. 고기나 과일 모두 날 것으로 올린다. 제주(제주)는 막걸리를 받아서 사용하나 예전에는 직접 도가집에서 담가서 제사를 지냈다. 제물은 도가에서 제를 지내기 전까지 준비하고, 축문은 제관이 책을 보고 써서 미리 준비해 놓는다.
 산신제를 지내기 전, 마을에서 “언제 산제사를 올리니 정성껏 준비하라”는 동네방송을 한다. 그러면 그 때부터 제관은 물론, 마을 사람들은 제사에 참여 하기 위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온 마을 사람들의 정성을 모아 지내기 때문에 초상집에 다녀 온 사람이나 기타 부정한 일을 한 사람들은 스스로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도가를 맡은 집에서 직접 제물을 준비했으나, 마을회관이 생긴 이후부터는 마을회관에서 제물을 준비한다. 제물을 준비하기 전 도가를 맡은 집에서는 마을회관 앞에 왼새끼로 금줄을 만들어 치고, 제물을 준비한다. 이 때 음식을 만드는 마을회관에는 도가담당 외엔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예전에 도가집에서 직접 제물을 준비했을 때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금줄과 함께 집 주변에 황토도 뿌렸으나, 현재 황토는 뿌리지 않고 금줄만 친다.
 산신제 당일 낮에 마을의 남자들이 산에 올라가 제단 주변을 미리 청소한다. 여름에는 풀을 베고, 겨울에 눈을 치워놓은 후 밤에 쓸 땔감을 준비해놓는다. 청소가 끝난 후 제단 주변에 금줄 두르는데, 금줄에는 한지를 듬성듬성 꽂는다.

⦁산신제의 진행
 노목마을의 산신제는 자정에 지낸다. 당집은 따로 없으며 개울가에 평평하게 닦아놓은 터가 제단이다. 제관을 비롯한 마을 남자들이 밤 11시에 산에 올라가서 제사준비를 하고, 자정이 되면 제사를 지낸다. 제관이 향을 피우고, 나이가 많은 주민이 술을 올린다. 축문을 읽고 태우며,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소지도 태운다. 제사가 끝난 후 떡만 조금 고시래 해놓고 제물을 거두어 산을 내려온다.
 이 산신제가 끝나고 마을로 내려오면 마을 어귀에 있는 오릿대에도 제사를 지낸다. 이 때 제물은 따로 놓지 않고 술만 올리고 절을 하는 것으로 제의의 절차는 간소하다. 예전에는 오릿대 옆에 있는 현재 흥국사 자리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당집 안에 ‘구학산신령신위’라고 쓰인 위패가 있었으며,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날 두 차례에 걸쳐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 서낭당이 철거된 이후, 현재는 산제당에서의 제사가 끝난 후 오릿대에 잔을 올리는 것을 서낭당에 제사지내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한다. 제사 후 오릿대의 줄기에 명태를 실에 묶어 소지와 함께 걸어둔다.
 산신제를 마치면 다음날 마을회관에 사람들이 모여 제를 지낸 음식과 따로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산에 올라가 산신제의 뒷정리를 한다.
 산신제 축문은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형식을 그대로 사용한다. 축문은 마을의 안녕과 번영, 주민의 건강을 비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보통 제관이 책을 보고 작성한다. 이 때 제관이 한문을 잘 쓰지 못하는 경우 잘 아는 사람이 대신 써주기도 하며, 축문을 읽은 뒤에 소지와 함께 불에 태운다.
 마을에서 오릿대라고 부르는 솟대가 몇 해 동안 없어졌는데 그 동안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자주 생겨났다.
 주민들 간에 싸움도 자주 일어나고, 몇몇이 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자 마을회의를 통해 다시 만들었고, 산신제와 함께 오릿대에도 정성껏 제사를 지내고 난 뒤로 그런 일이 없어졌다.
 아이 사람들이 뭐 싸우구 이래다가 아유 이런 얘기두 하기두 그래.. 자살두 해구 자꾸그래가주구.. 약을 먹구 약을. 아마 그래가주 다시 그걸 해 세우구 정성껏 해요. 그러구는 괜찮대요.

⦁산신제의 특징
 노목마을에는 제천시에 현재 단 두 곳에만 남아있는 솟대가 존재하고 있는 지역으로,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기 위해 드리는 마을 공동의 제사를 매우 정성껏 지내오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일부 집을 제외하고는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까지 불만 없이 기쁜 마음으로 제사에 참여한다. 마을에 신종화(40대초반, 남자)씨는 몇 해 전 쓰러진 이후 중단하기는 했지만, 최근까지 추수거지 이 후 수수팥떡을 놓고 안택을 지내왔다. 옥전2리는 몇 해 전부터 종교집단이 마을에 집성촌을 이루면서 본래의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마을제사에 함께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을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는 편이어서 큰 부딪힘 없이 지내고 있다.

◎ 별새꽃돌자연탐사과학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산 노목마을에 있는 자연생태체험관이다. 1999년 11월 노목탐사관으로 개관하였으며, 2003년 5월 과학관 등록, 2004년 5월 별새꽃돌자연탐사과학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4년 09월 제천시 청소년 이용권장시설 지정, 2005년 03월 충청북도 교육청 과학 체험 학습장 지정, 2006년 01월 서울시 교육청 과학 체험 학습장에 지정되었다. 2006년 09월 (사)국재청소년문화협회 주최 제1회 대한민국캠프대상 수상, 2007년 서울신문 대한민국 우수기업 대상 수상, 2009년 경향신문 온라인 유망브랜드 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천문관측, 조류관찰, 식물관찰, 화석전시 등의 자연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도심 생활에 찌든 현대인과 청소년들이 자연생태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자연탐사과학관이다. 체험을 통해 도시생활로 피폐해진 인성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곳은 별, 새, 꽃, 돌의 네 가지를 자연세계의 대표 주제로 선정하고 있다.
 별을 주제로 하는 구학산천문대에서는 지붕을 열어 밤하늘의 별을 관찰 할 수 있다. 이곳에는 20m슬라이딩 돔과 다양하게 천체망원경이 있는데, 참가자들이 직접 조작해 볼 수 있다. 새를 주제로 하는 과학관에서는 쌍안경과 조류탐조용 망원경을 이용해 야생조류를 관찰할 수 있다. 꽃을 주제로 하는 식물생태학습원에는 150여 종의 야생화와 30여 종의 허브, 65종의 나무가 있으며, 고배율확대경을 통해 이들을 관찰할 수 있다. 돌을 주제로 하는 화석전시실에는 200여 점의 화석이, 암석광물교육실에는 100여 점의 광물 원석이 전시되어 있다.
 현장체험 프로그램, 숙박 프로그램, 하루탐사 프로그램, 야간 천체탐사 프로그램, 찾아가는 천문 이동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모든 교육프로그램은 예약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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