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문화사료관 마을기행

   

마을기행

제천문화원 마을기행 입니다.

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26 15:25
목록
[백운면] 도곡리[道谷里]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3,731)  
도곡리는 비봉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나온 산주기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이다. 예부터 옹기로 유명한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도곡리는 본래 제천군 서면 지역으로서 ‘도곡(道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한산포(漢山浦), 우경(牛耕), 화산(花山), 공재(公才)를 병합하여 백운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승격에 따라 제원군 백운면 도곡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1일 시군 통합에 따라 제천시 백운면 도곡리가 되었다.
  도곡리는 박달재 정상에서 8km, 백운면 소재지에서 강원도 신림 방면으로 4.5km 떨어진 42번지방도 우측에 위치한 물 맑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살기 좋은 농촌마을이다. 벼, 사과, 고추 각종 농산물들을 생산한다. 도곡리는 1리와 2리로 나뉘는데, 도곡1리의 면적은 498ha, 논은 54ha, 밭은 56.3ha 이다. 인구수는 153명, 가구 수는 65가구이며, 특산물은 사과, 담배, 화훼, 쌀, 고추 등이다. 자연마을로는 우견이, 꼴미, 도장골, 주막거리 등이 있다. 도곡2리의 면적은 383.8ha, 논은 46ha, 밭은 54ha이다. 인구수는 147명, 가구수는 61가구이며, 특산물은 사과,고추 등이다. 자연마을로는 백호지, 공재, 한삼포, 둔장터 등이 있다.

◎ 도곡리 지명유래

갓바우 : 예찬리 남쪽 산에 있는 바위. 모양이 갓처럼 생겼다고 함.
거룡대(去龍垈) : 도곡리에 있는 마을.
공자(公梓) → 공재
공자소(公梓所) → 공재.
공재(公才)[공자, 공자소, 소포] : 둔창터 서쪽에 있는 마을. 꽃미 아래가 됨. 지방 하급행정 구역의 하나인 소(所)가 있었음.
괴목(槐木) : 도곡리에 있는 괴목. 둘레 7m.
궁틀[궁평] : 도곡리에 있는 들. 경순왕 이궁터가 있음.
꽃미[화산] : 꽃미 밑에 있는 마을.
꽃-미[화산] : 우경 서쪽에 있는 산.
대감나드리 : 공재 서쪽에 냇가에 있는 마을.
도장골 : 예찬리 밑에 있는 마을. 도장 안처럼 깊숙하고 아늑함.
둔창대(屯倉垈) → 둔창리.
둔창터[둔창대] : 한산포 서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 서쪽의 과수원 일대가 둔창터이다. 이곳은 고려시대에 큰 창고가 있었으며, 예전 이 마을에 큰 장이 섰다고 한다.
명전바우 : 도곡 어귀에 있는 바위. 모양이 상여 앞에 들고 가는 명정(銘旌)처럼 생겼다고 함.
바ᄁᆞᇀ 공재 : 공재의 바깥 쪽에 있는 마을.
배찬이 : 도장골과 예찬리 사이에 있는 골짜기.
백호리 : 도곡리에 있는 마을.
분동재 : 우경 뒤쪽에 있는 산. 산봉우리가 뾰족함
석탑(石塔) : 도곡리에 있는 돌탑.
성산교회 : 도곡리 218번지에 위치 신도 수 40명 정도
소포(小浦) → 공재.
안공재 : 공재 안 쪽에 있는 마을
예찬리(禮讚里) : 꽃미 북쪽에 있는 마을.
옥녀봉(玉女峰) : 한삼포 뒤쪽에 있는 산.‘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이라 함.
우경(遇慶, 牛畊) : 도곡 동쪽에 있는 마을.
원도곡(元道谷) : 도곡리 원 마을.
절골 : 꽃미 뒷산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음.
절꼴 : 예찬리 동쪽 산에 있는 산골짜기. 무쇠점이 있었다 함.
쪽도리바우 : 예찬리 동쪽 산에 있는 바위. 족두리처럼 생겼다 함.
한삼재 → 한삼포.
화산(花山) → 꽃미.
화산(花山) → 꽃미.

◎도곡리 문화유산

⦁도곡리사지(道谷里寺址)
도곡리사지에 전하는 유물은 사역 내에서 수습되는 기와편들과 주초석재 한 점이 유일하다. 주초석재는 길이 68~75cm, 두께 35~40cm의 초석으로 평평한 자연석의 윗면을 돌아가면서 세심하게 다듬은 흔적이 뚜렷하다. 기와편도 소량만 남아있고,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것이 드문 편이다. 수습한 기화는 무문이나 청해파문이 시문되어 있어 조선시대의 사찰터로 판단된다.

⦁도곡리 유적
도곡리에서 돌도끼가 나왔다는 사실이 <충북 유적 유물 지명표> 241쪽에 실려 있다, 도곡리 일대는 화당천(化塘川)과 운학천(雲鶴川)이 합류하여 원서천(院西川)을 이루면서 주변에 일대에 넓고 평탄한 지역과 야산지대를 이루고 있어 선사인들이 생활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곡리 유적과 쳥동리에서 새로이 찾은 구멍바위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생활했던 흔적으로, 이 지역 일대가 선사인들의 살림터로서 이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장골 보호수
도잘골 보호수는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2003년 4월에 제천시 보호수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수종은 느티나무고 수령은 약 400년 정도 되었다. 나무의 높이는 15m이고, 둘레는 5.5m이다.

◎도곡리 역사인물

⦁민기(閔機, 1568-1641)
민기는 조선시대 문신이며, 자는 자선(子善), 호는 서한당(棲閑堂), 본관은 여흥, 정랑 민여준(閔汝俊)의 아들로 제천시 백운면 출신이다. 건조 30년(1597)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고 전적을 거쳐 제주 목사로 부임하여 탐관을 몰아내고 부역과 조세를 가볍게 하여 신망을 얻었다. 후에 경주 부윤을 지냈으며, 청백리로서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높았다. 조선 숙종의 계비인 인형왕후의 증조할아버지이며,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황주석(黃株 錫 )의 『신제전서(臣濟全書)』<동경수정안경명(東京水晶眼鏡銘 >에, 경주부윤 민기가 1630년경에 경주에서 만들어진 남석안경(南石眼鏡)을 착용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임진왜란 직후에 국내에서 안경이 제작되었음을 증명한다.
묘가 도곡리에 위치한다. 묘소는 묘역이 3,000평, 봉분은 20편으로 정경부인 (貞敬夫人) 남양홍씨(南陽洪氏)와 합장으로 되어 있고, 봉분은 화강암으로 된 두께 55cm, 길이 250cm가 4개, 305cm 2개인 호석으로 들러 있다. 묘 앞에는 묘비와 화강암으로 된 가로 158cm, 세로 95cm, 높이 25cm의 상석과 문인석 2개, 망부석 2개, 400년 된 쥐뽕나무 2그루가 있다. 묘 입구에 민기의 대리석 신도비가 서 있다.

⦁이우춘(李遇春)
 이우춘(1538~1610)의 호는 국은(菊隱), 자는 여인(汝仁)이다. 1573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사후에 호조참의에 추증되었다. 부인 성산 임씨는 1549년 8월28일에 태어났으며 1639년 6월16일 죽었는데 향년 91세였다. 사후 숙부인으로 추증되었다. 묘가 도곡리에 위치한다. 봉분은 남북 장축이 670cm이고, 동서가 600cm이다. 비석은 비신이 158x61x24cm이고, 비석받침이 116x83x50cm이며, 이수 107x75x51cm이다. 촛대석과 동자석은 쌍으로, 높이가 각각 150cm, 128cm이다. 그리고 상석과 향로석을 갖추었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민진원이 글을 썼다. 전면의 글씨는 한호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며, 숭정연간(崇傳年間) 45년 후 무진년에 글을 짓고, 그 뒤 45년 임자년에 쓰고, 그 뒤 47년 무술년 4월에 세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숙(李叔)
이숙(1568~1645)의 자느 선초(善初)로 1606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사후에 공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부인 함양박씨(1556.5.16.~1609.9.17.)는 사후 정부인으로 추증되었다. 부인 함양박씨(1556.5.16.~1609.9.17.)는 사후 정부인으로 추증되었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민진원이 글을 썼으며, 전면의 글씨는 환호의 글씨를 집자한 것으로, 숭정년간 45년 후 무진년에 글을 짓고, 그 뒤 47년 무술년 4월에 세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묘가 도곡리에 위치한다. 본분은 남북 장축이 720cm이고, 동서가 705cm이며, 비석은 비신이 152x59x28cm이고, 비석받침이 132x85x40cm이며, 이수는 118x42x83cm이다. 촛대석과 동자석은 쌍으로, 높이가 각각 180cm, 175cm이며, 상석과 향로석을 갖추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