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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제천문화원 마을기행 입니다.

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2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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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면] 화당리[花塘里]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3,154)  
화당리 마을 앞으로는 수백 년 묵은 노송이 울창하며, 맑은 화당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뒤에는 삼봉산이 자리하고 있다. 본래 제천군 원서면 지역으로 ‘꽃당이’, ‘꽃댕이’ 또는 ‘화당(化堂, 化塘)’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죽관리(竹串里)와 소포리(小浦里)를 병합하여 화당리라 해서 백운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승격에 따라 제원군 백운면 화당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에 따라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가 되었다. 화당리는 행정 구역상 1리와 2리로 나뉜다.
  화당1리는 삼봉산 아래에 역사 있는 제천의 유적지린 향고골을 북쪽에 등에 업고, 서쪽으로는 우뚝 소슨 옥려봉이 태풍을 막아준다. 마을 앞에는 수 백년 묵은 노송이 울창하게 우거지고 남쪽으로 맑은 물 화당천이 시원하게 흐르는 살기 좋은 온유한 마을이다. 삼봉산 정기를 받아 106세까지 장수하신 분도 있고 자손들은 학문이 뛰어나 서울대를 졸업하여 사회로 진출하는 자손들도 많다. 또한 군에 입대하여 사관학교에서 수석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장교로 여러 명 복무하고 있하고 한다. 마을면적은 532.8ha이며, 논은 30ha, 밭은 78ha이다. 인구수 196명, 가구수는 81가구이다. 특산물은 사과이다. 화당초등학교가 위치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약소동, 물안, 꽃당, 웃꽃당, 작은개 등이 있다.
  화당 2리는 강원도 귀래면과 경계지역으로 대부분의 주민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최근 풍자마을이 조성되어 외지인의 전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마을면적은 1582.6ha이며, 논은 25ha, 밭은 192.4ha이다. 인구수는 114명, 가구수는 74 가구이다. 특산물은 메주콩, 무, 배추 등이다. 하천의 최상류에 자리 잡은 화당2리는 깨끗하고, 마울 뒷자락의 삼봉산(910m)은 전국 산악인들의 등산코스이며 4km에 걸친 마을 경관이 뛰어나다.
◎ 화당리 지명유래
● 강승갱이 : 작은개 서쪽에 있는 마을.
● 너럭골 : 호두나무배기 동쪽에 있는 마을. 
● 대꼬지[죽관리] : 화당리에 있는 마을.
● 배티(拜峙)¹ → 뱃재.
● 배티(拜峙)² → 뱃재.
● 뱃재¹[배티,이현] : 뱃재 밑에 있는 마을.
● 뱃재²[배티.이현] : 호두나무배기 서쪽에서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운남리로 가는 재. 신라 경순왕(敬順王)이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이 재에 올라 꿇어 앉아 절을 했다 함.
● 비디재¹ : 비디재 밑에 있는 마을.
● 비디재² : 역주벌 남쪽에서 중원군 엄정면 가춘리로 가는 재.
● 사리재 : 화당리에 있는 마을.
● 새매기¹ : 새미기 밑에 있는 마을.
● 새매기² : 송골 남쪽에서 중원군 엄정면 가춘리로 가는 높은 고개.
● 새절골 : 너럭골 위에 있는 골짜기. 새절이 있었음.
● 새터말[신대촌] : 강승갱이 남쪽에 새로 된 마을.
● 소포(小浦) → 작은 개.
● 송곡(松谷) → 송골.
● 송골[송곡] : 중간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 소나무가 울창 하였음.
● 신대촌(新垈忖) → 새터말.
● 약수동(藥水洞) : 꽃댕이 북쪽에 있는 마을.
● 여우내 : 약수동 서북쪽에 있는 마을.
● 역주벌 : 송골 서쪽에 있는 마을.
● 옥녀봉(玉女峰) : 꽃댕이 서쪽에 있는 산. 산형이 옥녀(玉女)가 머리를 풀고 있는 형국이라 함.
● 이현(梨峴)¹ → 뱃재.
● 이현(梨峴)² → 뱃재.
● 자래바우 : 작은개 앞에 있는 바위. 자라처럼 생김.
● 작은개[소포] : 새터말 동남쪽에 있는 마을. 1750년대 홍수로 인해 없어졌다가 다시 이룸.
● 전사처(箭事處) : 대꼬지에 있는 옛 하급 행정 구획의 하나인 처가 있었음.
● 전장터 : 꽃댕이 맞은 편에 있는 터. 예전에 장이 섰음.
● 주막거리 : 송골 서쪽 길가에 있는 마을. 주막이 있었음.
● 죽관리(竹串里) → 대꼬지.
● 중간땀 : 새터말 서쪽에 있는 마을. 화당리의 복판이 됨.
● 진장터 : 꽃댕이 맞은 쪽에 있는 터. 고려 때 제주(堤州=堤川)
● 항교골 : 꽃댕이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제주(堤州=堤川) 고을의 향교가 있었다 함.
● 호두나무배기 : 역주벌 서북쪾에 있는 마을. 1800년대 호두나무[胡桃]-가 많았다 함.
● 황나절골[황학사] : 너럭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황나절이 있었음.
● 황학사(黃鶴寺) → 황나절 골.

◎화당리 문화유산

● 정재하 효행비(鄭在夏孝行碑)
  정재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83년 4월 24일 날 세웠다. 봉화정씨 문중 소유로 정병수씨가 가까운 연고자이다. 모친 이씨가 돌아가시자 하관을 끝내고 집으로 오지 않고 그대로 묘 앞에서 3년 동안 기거하며 예를 다하였고 살아생전 병환 중일 때 한시도 떠나지 않고 병간호를 하였다고 한다.

● 제주관아지(提州官衙址)
  『충청도읍지』 7, 제천현지 고적조에 따르면 제주고치(堤州古治)가 원서화당(遠西花堂)에 있었는데, 지금은 오직 향교, 관아, 객관 등의 터가 전하고 있다고 하였듯이 화당리는 제주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다. 『한국지명총람』 3(충북편), 제천군에는 꽃댕이 북쪽 초등학교 자리에 고려 때의 제주 고을의 관아가 있었다고 하였다. 마을 노인의 말에 따르면 제주 고을의 관아터는 화당초교 바로 북서쪽의 밭이라고 하였으며, 실제는 그 밭에서 고려시대의 기와가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 밭 일대가 제주 고을의 관아터로 여겨지며, 기와지붕을 올린 건물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당리 이야기

● 양짓말 미륵(彌勒)의 유래
  양짓말 앞 도로 옆에 있는 문인석이다. 예전에는 집까지 지어 놓고 위했었다고 하나, 현재는 그 옆에 쓰러져 있던 것을 세워 놓고, 앞에다 시멘트로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예전에 장수가 부모 산소에 가져다 놓으려고 양 손으로 두 개의 미륵을 안고 가다가 관군이 잡으러 오니까 내려놓고 뱃재로 넘어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개는 지금 남아 있는 것이고, 다른 한 개는 용마가 났다는 용마산에 내려놓았는데 그 미륵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죽기 직전에 미륵을 한 번 돌면 하루 앓다가 죽고, 두 번 돌면 이틀 앓다가 죽는다고 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여러 번 도는데 그러면 많이 앓다가 죽는다는 이야기도 지니고 있다.

● 용마산과 미륵, 역적골
  예전에 용마산에 큰 무덤이 있었다. 그 후손이 용마산에 무덤을 쓰고, 집안에 장수가 났는데, 그 장수가 문덤의 석상을 세우기 위해 옆구리에 끼고 가다가 뒤에서 활을 쏴서 그만 현재의 위치에 미륵을 세워놓고 갔다고 한다. 미륵에 가서 치성을 드리면 죽을 때 3일만 앓고 죽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사자 : 누가 이렇게 세웠다 그러던데요?
  임영숙 : 옛날에 그 전설을 들으믄 여기 역적골이란 데가 있어요. 아 역직골. 용마산에서 거기다. 용산에 산소를 그 김 뭐시라 하는데. 용마산에 산소를 쓰구 그 자손이 났는데 인제 그 장사가 나 가지고. 야, 어 그 손자 산소에 인제 성묘를 해 세우기 위해서 그 비석을 뭐 전설에 얘기 들으믄. 큰 비석이 고 용마산 밑에 그 있었어, 근데 그게 없어졌어. 상돌을. 상돌, 상돌을 이래 큰 거가 있었구. 그걸 젊어지고 미륵을 양쪽 겨드랑이에 찌구. 가다가 뒤에서 화살이 막 날라오구 해 가지고. 그래가지고서는 무거워가지고. 그건 화살이 아니여. 저 아래는 저 아래에다 하나 세워 놓고. 용마산에 그게 하나 있었어, 그런 비석이. 그것도 누가. 아이 그건 인민군때 나와가지구. 그때 인제 그게 김자점인지 그 얘기 같애 난. 어른들 말씀하고 그러는데. 김취려야. 그러를 인제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거기다가 인제 상돌을 짊어지서 감{가면} 못 올라가고. 고 밑에다가 아주. 산 밑에 고 옆에 있었거든 그게, 큰 돌이. 그런데 없어졌어.
  조사자 : 그 사이는 저다가 세워 가지고 요사이 누가 기도도 한다 그런다던데?
  임영숙 : 저 밑에. 기도를 하면은 노인들이 가 기도를 하면 뭐 삼일간 아프고 돌아가신다고. 고렇게 하면은 그기 그렇게 된다는 나두. 그 얘기가 있어요. 노인네들이 거기 가서 그 불석을 끊어 안고 “나 많이 아프지도 않고, 저기 아프지 않게 하고 주게 해 주 십시오.” 세 번 세 번만 돌믄 크게 안 앓고 돌아가신다네. 아 삼일만이면. 늙은이들이, 허허. 그런 전설 얘기가 있어요.
  조사자 : 그래 요 사이도 마을에서도 그 제사 지냅니까?
  임영숙 : 안 지내요. 그 전에는 여기 당이 있잖아.
  조사자 : 사당에는 지금 서낭당이 없습니까?
  임영숙 : 서낭당이 옛날엔 있었는데 지금은 안 지내요. 그래서 그 장사가 역적골이란 델 가서 역적모의를 했다는 얘기예요. 사람을 그리 가는 사람을 다 끌어 마 가지고 어디 나가지 못하게. 그렇게 해 가지고 역적이 되 가지고 해를 봤다는 기여. 역적골에서 거기 군사를 뫄 가지고 훈련을 했대. 아글쎄. 그래서 역적골이야. 훈련을 해가지고 이렇게 했는데. 에- 뱃재고개를 넘어가지 못하게 보초를 시고 막 해가서 꼼짝 못하게 근데 그래서. 그게 한양 인제 서울, 저기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앞으로 가는거지. 임금님인데 그래가지고선 이렇게. 공제 이씨네가 그랫대. 공제 이씨 한 성경 공제라 그래요. 그래서 그 공제 이씨네가. 한 사램이 만날 상 옷을 입고 돌아당겨 밤에. 그래하구 이렇게 도랑으로 오르내리면서 곡을 하고 이랬대. 그래 미친사람이라 그랬대, 그 사람을. 그렇게 해믄서 그 사람이 이제 뱃재를 내 가지고 상속을 해, 가 핼라고. 그래서 뱃재를 넘어갔는데 이 사람이 가니까 이 미친 사람을 뭐 통과를 시키줬대. 그래가주서는 뭐 통과를 시키줘가지고선 가서. 아이, 나라에 가 신고를 했잖아. 신고를 해가지고 거기가 이제 잘 못 되 가지고 역적이 되었다는. 그래 역적골이라고 뭐 내 어른들 말씀을 내 그 얘긴 들었어요.
  조사자 : 그 역적골이 어딥니까, 뱃재 저 새로 난 길에서?
  임영숙 : 뱃재에서 좌측으로다가.
  조사자 : 골짜기를 물 나오는 골짜기를 쭉 올라가면 거기가 역적골 입니까?
  임영숙 : 예.
  조사자 : 우리가 그 백운 저 뭐야 면사무소 있는데서도 옛날에 그 얘길 들었어요.
 
● 화나절터의 유래(황산사터)
  황나절골에 있는 황산사의 터이다.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이 고려(高麗) 왕건(王建) 에게 나라를 바치고, 괴로운 마음을 잊으려고 명산(名山)을 찾아 가다가, 평동리 궁평에 이르러 이궁(離宮)을 지었다. 그리고 뱃재에 올라 강원도 용화산(龍華山)의 위용을 감탄하여, 그 산에 있는 돌을 깨어 미륵을 만들게 하고, 이 절을 세워 승려로 하여금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미륵에게 불공을 드리고 종을 치게 하여, 종소리가 나면 뱃재에 올라 꿇어 앉아 절을 했다고 한다.

● 뱃재[拜嶺]의 유래 ①
 화당2리에서 원주로 넘어가는 고개를 뱃재라 부른다. 그쪽으로 배가 넘어다녔다고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사자 : 여 뱃재라 그러잖아요. 여기를 왜 뱃재라 그럽니까?
  이근후 : 모르겠어요. 그 전에 뭐, 말로는 글루 배가 넘어댕깄다고 그러는데. 배가 넘어댕              깄는지 모르지유. 말로 그런데⦁⦁⦁⦁.
            허허허, 그래서 뱃재라고 하는건데.

● 뱃재의 유래 ②
  제천시 백운면 도곡리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이궁지가 있고 방학 궁뜰에는 동경저터가 있다. 경순왕은 신라 56대 왕위에 오른 지 9년 만에 왕건에게 신라 천년 사직을 물려주고 스스로 신하의 예를 취하였다. 왕건은 경순왕을 정승의 예로써 대우하고 신라의 옛땅을 식읍으로 주는가 하면 자기의 딸을 아내로 취하도록 하였으나, 경순왕은 각지의 명산을 찾아다니다가 이곳에 이궁(離宮)인 동경저(東京邸)를 짓고 머물렀다.
  그러다 강원도 원주 용화산 암벽에 미륵을 조각케 하고 황산사(黃山寺)에 종을 달게 하였다. 경순왕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황산사의 스님을 시켜 종을 치게 하였다. 경순왕은 지금의 원주로 넘어가는 고개에 가 있다가 종소리가 나면 미륵불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 망국(亡國)의 왕으로 천년 사직과 백성에게 속죄 하는 절이었다. 이 고개를 뱃재(拜領), 배치(拜峙)라고 부르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 경순왕과 귀래면
  경순왕이 제천시 방학동 부수동에 머물면서 뱃재를 넘어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귀래리로 넘어 다녔는데, 귀한 사람이 넘어 온 곳이라고 해서 그곳의 지명이 귀래면이 되었다.
 
  김정욱 : 네, 이궁지는 음, 제가 제천에 이궁지, 이궁지에서 조사를 해 보니까. 이궁지는 경순왕이 신라를 내 주고, 왕건한테 내 주고서. 어- 저, 월악산을 거쳐서 어-. 이 박달재 고갤 넘어서서 그래서 가다가 저어 방학동, 제천시 방학동 부수동이라는 곳에서 머물었답니다. 근데 몇 년인가는 정확히는 나와 있지 않아두 옛날 고서에 보니까, 거기서 꽤 그래두 한 십여년 살지 않았나 하는 그런 강,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이궁지라고 한 것은 거기서 살다가 저어 화당이라는, 백, 저 어디죠? 배래재. 배래재 저 넘어가면은 배래재 고개를 넘으믄 지금은 뱃제라고 불러요. 거기를 넘어가면은  강원도 귀래면입니다. 거기가, 그 귀래라는 것이 경순왕이 귀한 손님이 글루 넘어오셨다 해서 그래서 귀할 귀자, 올 래자. 그래서 그때부터 귀래면이라고 불렀답니다.

● 용마가 난 용마산
  예전에 용마산이 좋았다. 왜정 때 일본 사람들이 장군 못 나게 하느라 혈을 질렀다. 며칠 있다가 거기서 용마가 나와 돌아다니다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나중에 흙을 파보니 피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용마산이라고 한다.

  조사자 : 용마산이라 그럽니까?
  이근후 : 그 전에 거 용마가 났대요.
  조사자 : 예.
  이근후 :그래가지고 용마산이라고 그러지.
  조사자 : 용마산이라고⦁⦁⦁⦁.
  이근후 : 그, 그 전에 저기, 저 위에 산이 그게 좋았대요. 그게 장군이 날 산인데, 그 왜정 때 그 일정때 그 일본사람들이 그 장군 못 나게 하느라고 혈을 찔러 버렸대요. 그래서 거 있는데 몇 일 있다가 용마가 났는데, 그 말이 혼자 나와 돌아 댕기다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대요, 그. 그래서 용마산이라고 그런대요. 그 흙을 파니까 피가 나더란 말이 있더라고요, 옛날에 어른들 얘기 해시는⦁⦁⦁⦁.
  조사자 : 그러면은 아까 그 돌장승을 두 개 지고 가던 장군도 그 관계되는가요? 용마산으로 가져갔다 했잖아.
  이근후 : 가져가기는 용마산으로 가져갔다는데 모르지. 그 장군은 어털는건지.
  조사자 : 아, 피가 났다 그럽니까?
  이근후 : 예. 그런 소, 그런 소리들을 해시더라고 어른들이요. 애들 이 뭐 학교서 옛날에 뭐 전설을 써오라 해도 우리 아버님이 애들을 알키주드라고요.
  조사자 : 어, 용마산 그 이야기를요?
  이근후 : 예. 그러고 인제 그 말이 저 알로{아래} 이렇게 내리대고 물을 먹는 혈욱이라{형국이라} 그래요.
  조사자 : 예.
  이근후 : 저 아를로{아래로} 이 머리가.

◎ 화당리 노래

● 어랑 타령

  어랑타령 본조정은 활경도 하고도 원사이요
  관악지 본조정은 대호지하고도 육박이라
  어랑어랑 어야 어허이 디여라
  이것도 모두가 내 사랑이라

  어랑타령 본조정은 황경도 하고도 원산이요
  와다구시 본조정은 대호지 하고도 너럭골이라
  어랑어랑 어야

  어랑타령 본조정은 황경도 하고도 원사이요
  와다구시 본조정은 대호지 하고도 너럭골이라
  어랑어랑 어야 어허라 디어라
  모두가 다 내 사랑이어라

◎ 화당리 민속놀이 – 농악싸움

  백운면에서는 정월 대보름, 단오, 추석 등 주요 명절을 기해 농악싸움을 벌였다. 백운면의 각 마을이 청룡 편과 백호 편으로 나뉘어 농기 꼭대기에 매달

◎ 화당리 삼봉산

  삼봉산의 높이는 910m이다. 백운산(1,078m)이 모산(母山)이다. 역시 백운산을 모산으로 하는 십자봉(十字峰:985m) 정상에서 뻗어나온 능선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며, 십자봉 능선 외에는 다른 산과 연결되지 않는다. 북쪽의 백운산으로부터 구학산, 주론산, 시랑산, 천등산, 오청산, 옥녀봉, 십자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주위를 둘러싼 한가운데에 푹 파묻혀 있다. 이렇게 특이한 지형의 오지(奧地)에 자리한 탓에 8⦁15광복 직전까지만 해도 산 속에 호랑이가 떼가 살았다고 하며, 실제로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돌무덤인 호식총(虎食塚)이 남아 있다. 6.25전쟁 때는 치열한 격전지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원시림에 들어온 듯이 숲이 울창하여 태고의 신비와 자연미가 살아 있으며, 정상에서는 십자봉을 중심으로 한 봉우리들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동남쪽으로는 백운면 평동리 들판이 내려다 보이고 들판 너머로는 제천시로 넘어간느 박달재가 보인다. 산행은 화당교에서 시작하여 폭포와 삼거리를 지나 정상에 오른 다음 안부(鞍部:산마루가 말안장처럼 움픅 들어간 부분) 삼거리와 임버럭곳을 거쳐 대호지 마을로 내려오는 10.2km 코스가 있으며 산행시간은 5시간 걸린다. 승용차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선 다음 제천ic에서 충주시 방면으로 빠져나가 봉양읍을 지나 백운면으로 가다가 덕동계곡(德洞溪谷) 방면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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