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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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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면] 덕산면의 행정중심 - 성내리(城內里)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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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城內里)는 덕산면에서 가장 큰 마을로 농협, 파출소, 덕산초등학교, 신협, 새마을 금고 등이 위치해 있으며, 면사무소와 인접하여 덕산면의 행정중심지이다. 따라서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면 덕산면 관내의 다른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침 마을을 처음 찾은 덕산면 체육대회가 덕산 초등학교에서 열려 다른 마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더욱 분주한 모습이었다. 덕산면민체육대회는 덕산면에서주최하여 올해 처음으로 각 마을의 이장을 중심으로 성내리 소재의 성내초등학교에서 개최하였다. 
 
놀이 종목은 전통놀이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윷놀이, 계주, 족구, 공굴리기, 씨름, 배구, 투호 등).

성내리 북쪽에 위치한 성암리에 쌓은 산성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성내리(城內里)라 하였다. 마을은 진왜란 후, 처음 영월 신씨가 이 마을에 입향하여 터를 닦았고, 그 다음으로 전주이씨가 배판하였다고 전한다.

성내리는 오래 전부터 시장이 들어서서 번화한 곳이었다. 그래서 10년 전에는 300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대촌(大村) 있었지만 1998년 현재는 222가구가 11개반으로 나뉘어져 1∼3개반은 웃마을, 4∼11개반은 아랫마을로 불린다. 1980년대 초까지 덕산장에는 우시장이 있어서 성내에서 도기의 다락골, 멍어티(모녀티), 벌천을 통하여 경북 예천까지 가서 소를 사면 소몰이꾼이 따로 있어 그들이 소를 몰고 덕산장까지 왔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던 멍어티에는 소몰이꾼이 쉬어가는 주막들이 많았다.
소몰이꾼에게는 별도의 노임을 지불했으며 우시장으로 오는 길에 소에게 짚신을 만들어 신겼다. 그렇게 구매한 소를 덕산장에서 다 팔지 못했을 때는 충주 우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을의 상포계는 일제 시대에 약 50여명이 가입하여 조직되었는데, 양반들은 상여를 메지 않아 상여꾼은 따로 조직되었다. 어느 날 황강 권씨(權氏)의 양반집에서 초상을 당해 상여를 메게 되었는데, 상여꾼들이 노잣돈을 많이 요구하자 그 아들이 '감히 상놈들이 양반에게 버릇없이 군다'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상여꾼들은 상여를 그 자리에 놓고 가버렸다. 이 일이 있은 다음 마을의 상포계는 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상여를 메지 않았던 양반들은 상여꾼을 구하지 못해 난처해졌고, 어쩔 수 없이 자신들도 상여를 메겠다고 하여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지금도 마을에는 약 100여명의 사람들이 가입된 상포계가 조직되어 있다. 대틀상여는 32명, 소틀은 16명이 메고 있으며, 곳집은 덕산 초등학교 앞 길가에 자리한다.
15년 전(1983년)에는 마을에 2륜계 가마도 있었는데 개인이(김태근) 소유하다가 이사를 가면서 사라졌다.
성내리에는 동답(洞畓)이 900여평 있는데, 이 땅은 새마을 지도자가 직접 경작하여 쌀 한 가마니만 마을기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지도자의 노임 몫이다. 그 이유는 마을이장과 반장은 마을에서 주는 급료가 있지만 새마을 지도자에겐 별도의 노임이 책정되어 있지 않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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