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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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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면] 광산과 함께한 세월 - 월악리(月岳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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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 삼거리를 출발하여 월악산국립공원 매표소에 이르면 두 갈래 길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월악리 마을이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다. 억수리로 가는 길에 월악리 마을을 포함하여, 40가구가 살고 있다.
뒤로는 월악산 산줄기가 굽어 흐르고, 앞으로는 개울과 함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밭은 거의 모두가 화전으로 일구어졌으며, 월악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유지 이지만 10여년 전부터는 80%이상을 경작하지 않는다. 
 
밭에는 고추나 참깨를 많이 재배하고 있지만, 일손이 부족하고 높은 산록에 밭이 자리하기 때문에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마을 뒤로 흐르는 월악산 줄기인 동살미와 바랑골에는 중석광산이 있었다. 두 광산은 1919년에 문을 열어 83년까지 채광이 이루어졌다. 원래는 광산이 각각의 회사에서 별개로 운영하였으나 '대한중석'으로 합병되어 채광이 이루어 졌다.
월악리 사람들의 대부분은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외부에서 돈을 벌기 위해 들어왔다가 마을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채광이 활발할 당시에는 400여 가구까지 살았으며, 일본인들도 많았다. 하루에 20톤 가량이 채광되어 일본과 한국을 통틀어 5대 광산중의 하나라는 규모에 어울리게 하루에 20톤 가량이 채광되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모작'이라 하여 개인마다 캐내는 채광량에 따라 이를 판매하여 수익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대한중석'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지면서 덕대(사장) 아래에서 일하고 매달 월급을 지불 받았다.

현재는 논·밭 농사 외에는 수입이 거의 없고 6∼7가구가 민박을 통한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외부인에 의한 민박촌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광산 채광이 이루어 질 때는 논·밭 농사도 함께 했다. 마을입구에 쌀과 고기를 배급하던 곳에서 열흘에 한 번씩 배급을 받고, 월급에서 그 값을 제외하였다.
동살미에 늘어선 광업소 둘레로 '넉나도'라는 주막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일은 힘들고 환경은 나빴지만 일거리는 늘 많았기 때문에 "월악에는 개도 천원짜리 안주워 간다"할 정도로 여유 있는 삶을 누렸다. 마을사람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건강을 포기하고 월악리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그 결과로 월악리에 살고 있는 40여가구 중에서 11가구가 폐광 전에 남자호주를 잃고, 여자가 호주가 되어 생계유지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논과 밭도 일구지 못하고 있다.

민박집 사이로 드문드문 자리잡은 집들은 대개가 사람의 자취조차 찾기 힘든 빈집들이다. 월악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은 호화로운 민박집과는 대조적이다. 그들에게 민박집과 월악산 국립공원이라는 주변환경은 오히려 마을을 더럽히고 힘들게 하는 짐인 것이다. 마을입구에는 쌀과 고기의 배급소였던 건물이 그대로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두 채의 일본식 건물이 거주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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