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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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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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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면] 원(院)터가 있던 마을 - 원대리(院垈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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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조사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도면상에 표시되어 있는 지점을 찾아서 수산면사무소에서 단양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2km 떨어진 지점에 이르면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원대리라는 선명한 이정표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주변을 살펴보면 마을은 찾아볼 수 없다. 주변을 헤매다가 정류장에서 30여미터 떨어진 곳에 길 하나가 비로소 시야에 들어왔다. 옆에서 보면 어른의 허리만큼이나 자란 풀 때문에 이정표가 보이지 않고 정면에서 보면 마을로 이어진 길이 경사가 심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길에서 다시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이 원대리(院垈里)이다. 1984년 마을인구는 149명으로 집계되었다. 마을은 원래 청풍군 원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원집이 있었으므로 '원터' 또는 '원대'(院垈)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원대리'(院垈里)라 하였다. 하지만, 수산면의 마을현황에는 원대리가 없다. 그 이유는 마을민을 만나본 뒤에 쉽게 알 수 있었다. 마을민에 의하면 마을의 행정 단위는 최소 10가구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 이 마을은 가구수가 총 7가구에 주민은 15명 남짓이다. 따라서 올해(98년)부터 원대리는 괴곡리(槐谷里)에 편입되어 법정리(Legal Village)가 사라졌으며 자연마을로 원대리가 남아있는 실정이다. 마을민의 절반 이상이 1984년 충주댐 수몰로 마을을 떠나면서 마을은 계속되는 인구감소로 마을의 소멸을 재촉하고 있다.
자연마을은 가삽들과 원터였으나, 가삽들은 현재 수몰되었고 원터만 남아있다. 수몰 당시 가삽들은 38가구, 원터는 15가구가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재 남아있는 마을사람들 대부분도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수몰되기 이전까지(1980년대 초엽)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공동체 신앙인 마을제는 음력 10월 보름날 저녁에 수행하였다. 서낭제를 수행하던 마을제는 원터 앞에 있었던 한 아름 남짓되는 느티나무 앞이었다. 그러나 84년 충주댐 수몰로 동수(洞樹)가 유실되면서 마을제가 사라지게 되었다. 마을제는 제관과 축관 공양주가 참여하며, 제관과 제일은 음력 10월 초에 선정하였다. 마을제에 쓰이는 제물은 수산장에서 마련하였고 제상차림은 삶은 닭와, 술, 삼실과이다. 마을제는 전통적인 유식제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제의 마지막에 마을민 전체의 소망을 담은 소지공양을 하면서 그 해의 무병과 장수를 기원하였다. 마을에서는 충주댐 수몰로 동수가 유실되면서 제의를 수행할 제장을 잃어버렸다. 또한 신체 자체가 사라져버려 마을제가 중단되었다. 수몰 전, 주로 논농사와 함께 담배와 고추를 조금씩 경작했지만, 논 경작지가 수몰로 모두 유실되면서 현재 마을에서는 밭농사에 주력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주로 고추와 황기만 경작하는데, 고추 재배는 40여년 전부터 자급용으로 경작하다가 환금작물로 시세가 좋아지자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면적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일제시대부터 이곳은 괴곡리와 더불어 광산업이 70년대까지 활발하였다. 괴곡리에 있었던 충일광산과 계곡광산 등에 가서 채광잡역을 하였고, 70년대에 350원에서 500원정도 노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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