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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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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면] 용바우가 있던 마을 - 지곡리(池谷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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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면(水山面)에서 21번 시·군도를 따라 해발 243m 산등성이를 넘으면 정들을 지나 구곡리(九谷里)에 이른다. 여기서 너르거리들 우측으로 난 시·군도를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도전리와 지곡리 분기점이 나오고, 다시 승용차로 강변을 따라 5분 정도 달리면 수몰선 위로 마을길이 포장되어 있다. 마을길 위쪽으로 3m 정도 둑을 쌓아 가옥들이 가지런히 자리한다. 마을은 둑을 따라 동서방향으로 20m 정도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가옥구조가 동일하고 시멘트 기와를 올린 것으로 보아 모두가 수몰이후에 지어진 것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마을 끝에는 경주 최씨 재실(齋室)이 있고 그 옆으로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마을에는 강변쪽으로 윗늪과 아랫늪이 있어 지곡리(池谷里)라 불렸으며, 늪 아래 강변 옆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었다. 수몰이전 강가에는 '용바우'(바위)가 있었는데, 그 형상이 흡사 용과 비슷하여 용이 늪(윗늪·아랫늪)을 입에 물고 마을로 들어오는 형상이었다. 때문에 마을에는 부자가 많았으며 양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에 처음으로 입향한 시조는 경주 최씨(慶州 崔氏)였고, 다음으로 신창 표씨(表氏)가 입향하였다.
윗늪과 아랫늪은 모두 자연적으로 조성된 늪으로 이곳에서 수영을 하다가 마을사람이 익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늪지 주변의 농토가 대부분 밭이었기 때문에 이 늪은 농업용수로 활용하지는 않았다. 수몰이전 마을은 두둑·짚실·양지말·음지말·고숫골·새터·돌래로 구성되어 총 가구수가 100여호에 이르는 대촌(大村)을 이루었다. 수몰직전인 1984년 초에는 50가구로 줄어들었고 당시 마을인구는 234명이었다. 마을이 수몰되면서 토지가 수몰된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타향으로 이주하였으며, 양지말 수몰선 위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주민들은 현재 지곡리로 새로운 가옥을 지어 이주하였다. 현재 마을의 총 가구수는 11호이고, 마을인구는 24명(남 13명, 여 11명)이다. 수몰당시(1984년) 새로운 이주촌이 확정되면서 마을민은 가구당 500∼600만원의 주택자금을 융자받아 20년 상환으로 가옥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마을민은 수몰이후 현재까지 수몰로 인한 부족한 농경지와 자연환경의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몰이전 마을의 농경지 대부분이 수몰선 아래 위치하였기 때문에 많은 농경지가 유실되어, 현재 가용한 토지가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수몰이후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충분한 농경지를 확보하지 못한 채, 적은 규모의 농토를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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