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에서 청풍문화재단지를 가기 전 655번 시·군도(市·郡道)를 따라 도화리(桃花里)를 지나 강변을 따라 달리면 능강리(綾江里)에 이르게 된다. 능강리를 지나면 금수산(錦繡山) 아래 왼편으로 능강휴양콘도(E-S리조트 콘도)가 자리하고, 여름철에는 휴양객들로 성황을 이룬다. 이 부근에는 정방사가 있으며 주변의 산수가 절경을 이루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여기에서 비포장 도로로 2km를 더 달리면 금수산 자락 밑 가파른 언덕에 하천리(下川里)가 자리한다. 언덕에 위치한 마을 주변에는 좁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는데 대부분이 밭이고 논은 마을 아래 수몰선을 따라 조금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언덕을 내려가면 마을 입구 우측으로 1985년에 세워진 마을자랑비가 세워져 있고, 좌측으로는 장군석(石像)이 세워져 있다. 마을 중턱에는 연일 정씨(鄭氏)의 재실이 고색 창연하게 서있다.
수몰 이전 마을은 지소골·골무실·내매·진경동 4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었는데, 내매에는 30여호, 지소골에는 2가구, 골무실에는 30여호, 진경에는 7가구가 있었다. 수몰 이전인 1984년 마을인구는 270명으로 기름진 옥토가 현재의 수몰선 아래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현재 마을은 총 20가구(농가 15가구, 비농가 5가구)가 가파른 언덕길에 마을길을 따라 길게 자리하고 있고, 마을인구는 56명(남자 32명, 여자 24명)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의 동쪽에는 금수산(錦繡山, 1015.8m)의 높은 산줄기가 남북으로 장막처럼 길게 둘러있고 마을 앞으로는 남한강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내매마을 앞에는 내매나루가 있어 이곳을 건너면 수산과 연결된다. 마을 뒤편으로 상천리(上川里) 백운동으로 이어지는 고개길을 넘으면 단양군 적성면(赤城面)에 이르고 단양 장과 연결된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험하여 마을은 타지역과의 교통이 불편하다.
마을에는 1972년 대홍수로 농경지와 가옥 대부분이 침수되었지만, 마을민은 자력으로 마을을 예전처럼 복구하였다. 그러나 1984년 충주댐의 담수가 시작되면서 남한강 인근지역의 강제철거가 시작되어 어쩔 수 없이 현재의 진경동 자리로 마을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마을민 대부분이 고향을 등지고 충주·청주·서울 등지로 이주하였고, 나머지 마을민이 진경동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충주댐 수몰과 그에 따른 새로운 이주지의 형성은 수몰선을 벗어난 산등성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농경지의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남한강 수몰지역 대부분 마을에서 농업은 그들의 생계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주지에 충분한 농경지를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 마을민의 존립을 위협하게 된다. 또한 마을민 대부분이 타향으로 이주한 상태에서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고령화 추세는 이 지역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되고 있다.
마을 남쪽에는 가늠산(가은산, 463.3m)이 자리하고, 동쪽으로는 산세가 수려한 금수산(錦繡山, 1015.8m)이, 북쪽으로는 망덕산(242m)로 마을을 감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