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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문화원 마을기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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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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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면] 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 - 억수리(億水里)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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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면 후촌리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월악산 국립공원 매표소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면 월악리와 웃광천리, 억수리가 나온다. 물레방앗간을 거쳐 비포장길을 지나면 '산과 물이 깨끗한 마을 억수리'라는 마을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용하구곡(用夏九曲)에서 흘러나온 계곡 물이 깨끗한 계곡을 따라 세찬 물줄기를 뿜고 있어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파르게 솟은 월악산의 거센 산줄기와 계곡 아래로 음지말(1반)·사시리(2반)·양지말(3반)·용하(4반) 4개의 자연마을이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다. 험준한 산세를 따라 길게 늘어선 마을에는 1998년 현재 39가구에 125명이 거주한다. 마을은 월악산국립공원(月岳山國立公園) 대미산(大美山, 1115.0m) 아래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수용담과 청벽대를 지나 용하구곡을 흐르는 광천(廣川) 앞으로 자리한다.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문경시(聞慶市)와 인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제천시 한수면(寒水面)과 경계를 이룬다. 마을주변에는 월악산의 험준한 준령인 만수봉(983.2m), 메밀봉(840m), 꾀꼬리봉(890m)이 겹겹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으며, 매년 여름과 가을에는 용하구곡을 찾는 외지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억수리(億水里)는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뜻에서 '億壽'로 쓰다가 '마을 사이로 흐르는 물이 맑고 좋다'는 의미로 '水'자를 쓰게 되었다. '억수리'(億水里)라고 부르기 전에는 '걱시물'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마을과 인접한 인근지역에서는 '억수리' 라는 지명보다 '걱시물'이란 지명으로 부른다.

억수리는 밀양 박씨가 맨 먼저 마을을 개촌(開村)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밀양 박씨가 마을에 입향하기 이전에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와 강서대 사이에 200여 가구가 살았다고 전한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새로 집을 짓기 위해 집터를 다지다 보면 예전의 옹기와 기와 조각들이 나오기도 한다. 용하마을을 시작으로 4㎞ 가량에 걸쳐 9개의 계곡이 있는데, 이름하여 '용하구곡'(用夏九曲)이다. 한말의 심리철학자인 박의당과 그의 제자들이 이름짓고 탁본은 제자들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에 가까운 골짜기부터 영운담·청벽대·선미대·호호·우화굴·원조춘한·수룡담·활래담·강서대로 불리며,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빼어난 산수를 자랑하고 있어 계절에 상관없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을입구에는 4m 높이의 '아들바위'가 있는데, 이 곳을 지나는 마을 여자들이 그 벌려진 틈으로 돌을 던져서 올려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사시리의 문턱에는 억수리 사람들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산천만큼이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만원 의병장의 추모비가 세워져 마을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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