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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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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면] 겨울에 잣 구한 효행 - 실리곡리(實利谷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791)  
실리곡리(實利谷里)에 들어서면 그 마을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비문(碑文)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청풍 김씨(淸風金氏) 효자에 대한 전설이 전하고 있다. 그 비문에 따르면 이 마을에 옛날에 효자가 살았는데 그 효자가 열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병환에 들어서 말하기를, "죽기 전에 소원이 잣죽을 먹는 것이다."하니, 아들이 그 말을 듣고 밖에 나가, 한 겨울에 잣을 구해 아버지의 병환을 고쳤다. 그 효자가 나이를 먹어 일흔이 되던 해에는 어머님이 위독하게 되었고, 연로한 노모는 물고기가 먹고싶다고 해서 효자가 물고기를 구하러 강가에 갔다. 얼음이 두껍게 얼은 강가에서 망연자실하게 울다가 얼음을 깨고 있으려니까 커다란 물고기가 저절로 튀어나와서 자식은 물고기를 얻게되었다. 결국 효자는 강에서 얻은 물고기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 정성스럽게 달여 어머님의 노환을 고칠 수 있었다. 이렇듯 효자가 아버님의 병구환을 위해 엄동설한에 잣을 구했다고 해서 마을의 지명이 실리곡(實利谷)이 되었다고 한다.
실리곡마을에는 박씨와 김씨가 배판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충주댐 수몰로 실리곡의 1반을 제외한 모든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수몰 이전에 실리곡은 4개반으로 구성 되었는데, 1반을 '도리'라고 불렀고 2반을 '진도', 3반을 '아랫말', 4반을 '실리곡' 또는 '실리실'·'열매실'이라고 칭했다. 1998년 현재 마을사람들은 모두 4반(실리곡)에서 거주하고 있다.
수몰이전에는 실리곡과 아랫말 사이에 서낭나무가 있어 이 서낭나무에서 개인적인 소원을 빌었다고 전한다. 마을에는 '산지당골'로 불리는 골짜기가 있는데, 마을제를 지냈다는 마을제당은 현재 찾아볼 수 없었다.
남한강 수로가 활성화되었던 1930년대 말까지 이곳은 소금배와 뗏배가 정박하는 곳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마을주변에 정박하는 배가 정박했기 때문에 자연히 많은 여각과 주막이 나루터를 끼고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진도주막거리는 5 - 6채 정도가 1930년대 말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민의 생업은 농업으로 60∼70년대에도 경지면적 1단보(300坪)에 보리를 양석(2섬 : 4가마)먹었다고 하여, 보릿고개에도 걱정 없이 살았다고 한다. 현재 실리곡의 농토는 대부분 수몰되어 논농사는 거의 짓지 않고 담배와 고추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마을에는 보통 농가에서 사용하는 고추건조기의 10배가되는 건조실을 보유하고 있어서 이전에 사용하던 담배의 재래식 건조실을 사용할 때보다 1가구당 담배재배 면적이 10배정도 늘었다. 이는 대부분의 논이 수몰되어 논농사를 거의 짓지 못하게 된 배경과 더불어 이해될 수 있으며, 담배재배는 다른 작물에 비해 수입이 안정적인 이점을 지니고 있어 마을민에게 많은 호응을 얻고있다.

마을에는 예전부터 전해내려 오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마을의 유래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옛날 어느 산골마을에 가난한 父子가 살고 있었다. 땅 한 뙈기 없어 살기는 어려웠지만 마음씨 착한 父子였다.
어느 해 겨울 갑자기 아버지가 앓아 눕게 되었다. 아들은 밤을 지새우며 극진히 간호했지만 별 효험이 없었다. 돈이 없어 보약 한 첩 제대로 달여드리지 못했고 미음 또한 끓이지 못했다. 찬바람이 일고 눈보라가 휘몰아쳐 온천지가 눈밭이 되었는데, 아버지의 병환은 점차 깊어져 아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산에서 들짐승이 울고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저녁에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놓고 죽기 전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니 구해달라고 하였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잣나무에서 딴 싱싱한 잣이나 먹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이 말을 듣고 앞이 캄캄해졌다. 그날로부터 추위를 무릅쓰고 잣을 찾아 헤맸다. 이 겨울에 잣나무에 잣이 어떻게 열며 잣나무도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싱싱한 잣을 구해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님의 마지막 소원인 잣을 구해오지 못하면 그보다 더 불효가 어디 있겠는가? 아들은 곧 추위를 무릅쓰고 눈발을 헤집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거기에 아름드리 잣나무가 서 있었다. 겨울이어서 눈 덮인 나뭇가지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효자는 잣나무아래 앉아 하염없는 눈물만 흘렸다. 어느새 밤이 깊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꿈속에서 어느 신선이 나타나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 너의 효행에 감탄한 산신령님이 잣 한송이를 내려주니 한 알도 남김없이 까서 아버님에게 드리거라."
잠에서 깨어난 아들의 손에는 방금 나무에서 따듯하고 싱싱한 잣 한 송이가 들려져 있었다. 아들은 곧장 집으로 돌아와 아버님께 잣을 까서 드리니 신기하게 병환이 씻은 듯이 낳게 되었다. 그 후 잣을 얻은 마을을 실리곡(實利谷)이라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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