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16-07-12 13:17
[청풍면] 학고개에 삶의 둥지를 틀고 - 학현리(鶴峴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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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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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에 몸을 싣고 제천에서 수산방향으로 30여분 정도 달리면 금성면을 지나서 청풍면으로 접어든다. 금성면을 벗어나면서 승용차는 남한강의 푸른 물줄기를 옆으로 한 채 굽은 경사길을 조심스레 올라가게 되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기암괴석과 청풍호반의 절묘한 조화에 감탄하다 보면 강 건너 청풍문화재단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산허리를 감싸고 도는 국도변의 왼쪽에는 '학현리'라는 팻말이 큰 바위에 세겨져 있다. 여기에서 방향을 바꾸어 국도를 벗어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비로소 학현리에 이르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주변은 온통 금수산의 줄기들이 세차게 뻗어 가파르게 펼쳐지고 그 협곡 사이로 마을로 통하는 길이 꼬불꼬불 이어진다. 마을 입구에서 안마을(상학현)으로 가다보면 마을 이름이 왜 '학현리(鶴峴里)'인지 가히 짐작이 간다. '鶴峴'이 말해주고 있듯이 이 마을은 학고개로 불리워 졌던 마을이다.
마을이 좁은 협곡을 따라 길게 자리한 것이 마치 학의 목처럼 길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가면 제일 첫 번째 보이는 곳이 하학현이다. 여기서부터 마을의 시작이다. 하학현을 지나면 약물내기골이고, 그 다음이 사태골, 학바위, 상학현, 동금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학현리(鶴峴里)는 상학현에 숫학, 하학현에 암학으로 상징되는 두 개의 학을 닮은 기암에서 마을명(名)이 유래되었다. 또한 마을의 풍수적 형국이 학 모양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마을에 학이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마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는지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마을의 입향시조는 경주김씨였던 것으로 제보자 김진호(67)의 8대조 선조 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 240여년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 남한강 상류지역의 산림벌채와 수로를 통한 교역이 활발해 지면서 이 곳의 정보가 하류지역에 전해졌고, 17세기 후반부터 남한강 상류지역은 정감록 신봉자나 천주교도들 또는 난리를 피해 숨어드는 사람들의 피세벽거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 시기에 학현리에도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모둠살이 공간을 만들고 상학현에서 지금에 하학현으로 이르는 긴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그 뒤 일제 식민지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1970년대부터 화전민들의 정착지로 이주민들이 정착하게 되었고, 이 때 마을은 5개반 70가구가 넘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반 40가구가 살고있다. 지금은 상학현리(2반), 하학현리(1반)이지만 화전민 이주전에는 5개반으로 1반은 하학현동, 2·3반 상학현동, 4반은 동금동, 5반은 성안동이었다. 일제 식민지 이후에 5반인 성안동이 먼저 없어지고, 6·25동란 이후 4반 동금동이 사라지면서 상학현과 하학현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