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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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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면] 아홉 골짜기 마을 - 구곡리(九谷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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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면 남서부에 있는 서곡리(鋤谷里)로 가기 위해서는 청풍면의 물태리를 지나 597번 국도를 타고 차를 이용해 남쪽으로 30분 정도 가다가 좌측, 율지리로 향하는 길로 방향을 튼다. 여기서 2㎞ 정도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가면 도전리이다. 도전리의 청풍김씨(淸風金氏) 시조묘에서 다시 갈림림에 나오는데 좌측으로 가면 지곡리(池谷里)이고, 우측으로 10여분 정도 가다보면 지곡리와 구곡리로 나뉘어지는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우측으로 길을 틀면 곧장 구곡리(九谷里)에 닿는다.
 

외부에서 마을에 이르는 길은 이 외에도 수산리에 있는 수산중학교를 우측으로 끼고 돌아 약 15분 정도가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여기에서 좌측으로 길을 틀면 구곡리에 이른다. 마을은 수산면소재지에서 약 2km 떨어진 북쪽에 자리한다.

아홉 개의 골짜기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구곡'(九谷)이라 하는데, 마을 이름에서처럼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으며 마을 가운데로 작은 냇물이 흐른다.
전주 이(李)씨와 밀양 박(朴)씨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구곡리는 청풍군 근서면에 속했던 원래 구실이라 불렸던 마을이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곡리'(九谷里)라 하여 수산면에 편입되었다. 수산리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을 정골이라 하는데 신작로가 나기 이전에도 수산리로 가는 제일 빠른 길이었다. 인근 도전리, 율지리, 서곡리 사람들도 이 길을 통해서 수산리에 닿았다.
도전리에 추동초등학교가 생기기 전에 구곡마을의 학생들은 모두 수산초등학교와 수산중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는 충주, 청주, 제천 등지로 나가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학생이 있는 집은 자녀들의 교육비 때문에 빚을 지지 않고는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마을에는 50여 가구가 살았고, 84년 당시 인구 217명이었던 이 마을은 10여년 전부터 조금씩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98년 현재 22가구 77명 거주하고 있다. 85년 충주댐 담수로 인하여 하천리 일부가 물에 수몰되면서 상천리에서 1가구, 하천리에서 2가구가 마을로 이주해 왔다.
98년 현재 논 8㏊, 밭 57㏊인데, 84년 당시에는 56.5㏊, 밭이 6.2㏊로 급격한 경작지의 변화를 보인다. 일제 시대 담배·조·보리·밀과 논농사를 주로 하였고 목화재배는 일제의 강요로 경작하였지만, 해방 이후에는 목화재배를 중단하였다. 3∼4년 전에는 황기와 누에도 많이 했지만, 현재 마을민은 주로 고추와 담배를 경작한다.
농지는 마을 어귀로 들어오기 전 여녀골 앞에 너르거리뜰과 현재 마을회관 뒤로 보이는 논골을 따라 넓게 펼쳐져 있다. 70년대 초반까지 마을민의 대부분은 영세소작농으로 마을 소작료가 3,000석이 넘었다고 한다.

해방을 맞이하면서 토지개혁이 단행되었고, 이 때문에 마을사람 중에서 소작농에서 자작농으로 급격한 전환이 이루어졌다. 담배 종자는 현재는 영월초를 사용하지만, 과거는 영월초보다 상급으로 여기는 황승연초를 사용했다. 일제 시대에는 전매청에서 '담배소사'라 부르는 사람이 마을에서 재배되는 담배 포기수를 일일이 점검하였다. 고추는 일제시대까지 집안에서 소비되는 소량을 재배하였지만, 환금작물로 그 가치가 높아지면서 근래 들어 재배면적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한 아름이 넘는 느티나무 3그루가 마을의 수문장처럼 우람하게 서있으며, 느티나무 샘은 마을에 상수도가 설치되던 80년대까지 마을민의 유일한 식수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매년 동고사를 지낼 때 이곳에서는 우물고사를 함께 지냈다. 이곳에는 빨래터와 멱을 감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주변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마을민의 휴식처로 사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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