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문화사료관 마을기행

   

마을기행

제천문화원 마을기행 입니다.

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16-07-12 13:53
목록
[수산면] 쇠를 캐던 마을 - 전곡리(前谷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151)  

aa0ee8e7_.jpg

 

 

수산면 오티리에서 동쪽으로 시·군도를 따라 달리면 도전리와 구곡리를 지나 다불리와 전곡리 갈림길에 이른다. 여기서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굴고개재를 넘어 안골을 따라 내려가면 낮은 산자락 밑에 10여호 남짓 모여 있는 전곡리(田谷里)에 이른다. 마을 한 가운데는 세 아름이 넘는 오랜 느티나무가 서 있고, 마을은 앞실들 윗쪽으로 동서로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을 따라 앞실들로 내려가는 작은 개울이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으고 있고, 앞실들 앞으로 논이 펼쳐져 있다. 앞실마을에서 북동쪽으로 타옥재를 넘으면 쇠실마을이다.   
 

쇠실마을에는 현재 7가구가 모여 살고 있지만 교통로는 농로(農路) 밖에 없으므로 주민의 불편이 크다.

전곡리는 본 마을인 앞실마을과 타옥재 너머 쇠실마을을 포함한다. 1998년 현재 마을은 쇠실마을을 포함하여 총 15가구(농가 13가구, 비농가 2가구)가 모여 살고 있으며, 마을인구는 40명(남 22명, 여 18명)이다. 앞실은 개울을 따라 동북쪽에서 남서쪽으로 12가구가 산을 등지고 모여 있다.
마을의 형성은 쇠실에서 시작되었는데, 쇠실에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광산이 있던 곳이다. 쇠실에서는 금·은·동·철이 생산되어 해방이후에도 '복수광산'(株)이 지속적으로 채광을 하던 곳이다. 쇠실에서 금이 채취된다는 소문으로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었고, 그 이후 쇠실 앞쪽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입향하여 앞실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에는 1975년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는데, 이는 쇠실마을에서 채광을 하고 있던 광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80년 초에 복수광산이 폐광되면서 이곳의 광산업은 중단되었다. 광산업이 한창이던 1970년 중반에는 쇠실마을의 총 가구수가 10여에 이르고 광산에 근무하는 노무자는 80여명이 넘었다. 마을에 광산이 있었지만 마을민은 광산에서 채광업을 하지 않고 농업을 주업으로 삼았다. 마을에 자리하고 있던 광산이 마을경제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현재 마을에는 시내버스가 운행되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 수산면소재지에 가기 위해서는 걸어서 오리(2km)를 가거나 택시를 청해야 한다. 마을은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외부로부터 고립된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협소한 농토에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마을민의 대부분이 빈농층에 속한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