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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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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면] 재너머 황토마을 - 단 리(丹里)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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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리(丹里)는 청풍에서 남쪽으로 7km에 자리한다. 남한강 수몰이전 마을은 큰말, 서당말, 작은 마골, 곳집마을로 나뉘어져 있었고 70여호에 이르는 비교적 큰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수몰이전 큰말 33호, 서당마을 12호, 작은마골 12호, 곳집마을 16호 등 73호가 모여 살았다. 큰말 안에 새터말은 큰말에 비해 규모는 적었으나 충주댐 담수이후 새로운 이주촌으로 확정되면서 그 입지가 강화되었다. 새터말은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신개발지역이어서 새터말이라고 전해지고 있지만, 언제쯤 새터가 새로운 마을터로 자리하게 될지 마을사람들은 알지 못했었다. 
 

서당마을은 과거 학동들을 가르치던 큰 서당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단리를 비롯해 인근의 학동은 모두 이곳에서 한문을 배웠으며 수몰 전까지도 서당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곳집마을은 일명 '학교마을'이라고 불려졌다. 지난 66년 단산국민학교가 이곳에 개교했기 때문이다. 단산국교는 청풍국교 분교에서 독립하여 1980년대 초에 230여명의 학생들의 배움터로 자리했으나 점차 학생수가 줄어들어 현재는 폐교되었다. 그리고 충주댐 완공으로 마을은 대부분 물 속에 잠겨서 현재는 2개 반으로 구분된다. 1반은 양씨네가 많이 살아서 양각골이고, 2반은 벌 설통을 가져다 놓으면 잘되기 때문에 '설통밭골'이라고 한다.

단리에는 단종(端宗) 즉위 시, 피난을 나온 강릉 유씨와 인동 장씨가 처음으로 입향하였는데, 마을에 유씨가 많이 거주하던 시기에는 "유장판에서 미끄러지면 저 멀리 쫓겨난다"는 이야기가 전할만큼 그 위세가 당당했다. 현재 마을에는 임동 유씨의 12대조 묘가 외막골(수산면 소재)에 있고, 강릉 유씨(劉氏) 20대손이 살아오고 있어 이 마을의 시조는 강릉 유씨로 추정되며, 인동 장씨(張氏)도 16대를 살아오고 있다. 유씨(劉)와 장씨(張)가 대성을 이루고 안씨, 최씨, 김씨 등 각성을 이루면서 공동체를 꾸려나갔다.

예로부터 고명리와 단리에 유씨와 장씨가 많이 살았다고 하여 '고명단촌 유장판'이라고 했다. 유씨와 장씨가 아니면 세도를 부릴 수 없는 곳이라는 뜻. 수몰 전에는 70여 호가 살았는데, 대부분의 주민들이 서울, 청주, 충주, 괴산 등으로 이주를 하고 현재의 단리는 19호가 이주를 하여 형성된 것으로 유씨가 4가구, 장씨가 8가구, 박씨가 2가구, 김씨가 2가구, 황씨가 1가구, 이씨가 1가구이다. 단촌(丹村)은 단리의 옛 이름이다. 일제시대 지명개편과 함께 단촌(丹村)을 단리(丹里)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이다. 단리에는 여러 가지 지명이 전해 내려온다. 단산초등학교 앞을 무당골이라 부르는데 1960년대까지 무당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인근마을의 굿을 주관했다. 놋장골은 조선시대 이곳에서 놋쇠로 그릇을 만들었던 곳이다. 양기골은 양씨(梁)가 집촌(集村)을 이루어 살던 것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농바위골은 바위가 흡사 장롱처럼 생겼다는데서 유래되었으나, 일각에서는 용이 승천한 곳이라 하여 이름지어진 곳이라고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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