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16-07-12 13:12
[청풍면] 천지봉 아래 소담스런 마을 - 신 리(新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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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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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에서 597번 지방도를 따라 청풍면을 경유해서 우측으로 654번 도로를 따라 승용차로 5분정도 달리면 신리(新里)에 이르게 된다. 마을은 비봉산(飛鳳山, 531.0m)의 산줄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청풍면소재지에서는 남서쪽에 자리한다.
마을은 원래 청풍군 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새로 된 마을이라 해서 신촌(新村)이라 했고, 1914년 행정구역 페합에 따라 신리라 하여 제천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가 1918 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이 언제, 누구에 의해 개촌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수능 안(安)씨와 안동 권(權)씨가 마을에 입향하였다고 전해진다.
신리마을에서 청풍을 왕래하기 위해서는 고무재를 넘어야 하는데, 이 곳을 일명 '거미재'라고도 하며 수몰 전, 매봉과 웃담 1개반·마당재 1개반·큰마을 1개반·고등골과 던디골, 그리고 가갯거리 1개반으로 모두 5개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 때는 마을에 총 70여 가구가 넘게 거주하고 있었고, 마을민의 대부분은 벼농사에 주력했으며, 약 40여 가구가 담배를 경작했다. 그 이외에 경작물은 고추·보리·밀·콩 등이 있었다. 1998년 현재 마을은 총 30여가구가 살고 있으며 주로 담배와 고추를 경작한다.
마을에서는 정월에 택일하여 동제를 수행한다. 천지봉의 큰 소나무와 큰마을에 있었던 서낭당에서 제의를 수행하는데, 먼저 천지봉에 있던 당목에 제를 올린 다음 서낭당에서 제를 올렸다. 제물은 백설기와 막걸리만 올렸고, 제주는 청풍 도가에서 받았다. 제관은 연륜과 덕망을 갖춘 자로서 생기복덕에 맞는 사람을 선출하며, 제의 10일전부터 정결하게 몸을 닦고 금기생활에 접어든다. 큰마을에 있었던 서낭당은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허물었으며 천지봉에 있던 소나무는 송충이 피해로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라에 큰일이 날 때 송충이가 생긴다고 걱정하였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4.19가 일어났다고 한다. 당시 당나무(소나무)에 생긴 송충이가 천지봉에 있는 모든 나무들을 다 갉아먹어 마을의 주산(主山)에는 벌건 흙만 보였다. 이곳 천지봉이 영산(靈山)이라는 것은 다음의 이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래 전 신리 마을사람이 한 명 죽었고, 묘를 천지봉에 쓰려고 땅을 파는데 이상하게도 신리 마을 개들이 천지봉을 향해 짖었다. 그래서 묘소 파는 것을 중지하고 다른 곳으로 묘자리를 잡았는데, 그 후로 천지봉이 영산임을 알고 묘를 쓰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