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16-07-12 13:44
[수산면] 호미같이 생긴 마을 - 서곡리(鋤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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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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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면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서곡리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청풍의 물태리를 지나 597번 국도를 타고 차를 이용해 30분 정도가면 좌측, 율지리로 향하는 길로 방향을 튼다. 이 길은 아직 도로포장 공사가 진행중이고 여기서 2㎞ 정도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가면 도전리, 우측으로 가면 율지리이다. 우측, 도전리를 지나 다시 10여분 정도 가다보면 서곡리가 나온다. 외부에서 다른 길을 이용해서 서곡리로 들어오려면, 수산리에 있는 수산중학교를 우측으로 끼고 돌아 약 10분 정도가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게 되는데 좌측으로 가면 구곡리이고, 우측으로 가게 되면 도전리로 향하게 된다. 다시 도전리에서 좌측으로 가면 율지리, 우측으로 가게 되면 이곳 서곡리(鋤谷里)에 도착하게 된다.
마을로 들어서면 10년 전에 만든 마을회관 앞에 심은 느티나무가 큰 그늘을 만들어 마을사람들의 쉼터를 마련해 준다. 서곡리(鋤谷里)는 청풍군 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지형이 호미처럼 생겼다 하여 '호무실' 또는 '서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곡리(鋤谷里)라 하고 수산면에 편입되었다. 인근의 앞실·구실·느실 등이 이때 모두 골짜기 곡(谷)자를 써서 전곡·구곡·도곡 등으로 마을 이름이 변경되었다. 서곡리는 1984년 현재 마을인구 254명이며, 대략 일제 강점기 때 90여 가구, 해방 때 50∼60여 가구, 6·25동란 때 50여가구가 거주하였으며, 1998년 현재 29가구 88명이 마을에 거주한다. 마을은 모두 4개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곳에 있는 네 개의 자연마을은 마을 윗쪽에 있는 웃방골, 밑에 있는 하방골과 그 사이에 있는 쉬뜨리(새뜨리), 현재 마을 회관이 있는 방골로 구성된다. 웃방골로 이어지는 천자막에는 일제시대 세부측량을 하기 위해서 만든 삼각점이 있으며, 마을사람 거의 모두가 벼농사를 했지만 84년 충주댐 건설로 예전의 농경지는 모두 수몰되었다. 현재 마을의 주요경작물은 황기와 고추이다.
이 마을은 진주 강씨(姜氏)가 맨 처음 터를 잡았다고 전해온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흡이 오랑캐에게 굴복할 수 없다고 하고 풀밖에 없던 이곳에 터를 잡고 처음에는 움막을 지었다. 그 후 이곳의 토양이 좋아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농사일을 할 수 없었던 강흡은 주변의 도곡리와 지곡리 등의 인근에 학동을 모아놓고 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이 마을이 개촌한 때는 360여 년이 넘지만 이를 증명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