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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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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면] 아홉 마리 용이 지켜오는 마을 - 구룡리(九龍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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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에서 597번 지방도를 따라 남쪽으로 30여분을 달리면 금성면소재지가 있는 구룡리(九龍里)에 닿게 된다. 도로를 타고 계속 달리면 오른쪽으로 충주호가 펼쳐지며, 청풍면에 이른다. 예전부터 구룡 1.2리를 중심으로 주변의 적덕, 사곡, 진리, 한천, 약물게, 골말 등을 모두 구룡 5구로 불러왔다.

구룡리는 큰말, 잘개미골, 장텃거리, 한내로 이뤄져 있으며 큰말은 대문밭(大門田)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룡리는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마을로 평지뜰을 중심으로 주변으로 둥글게 위치하고 있다.     
 

구룡천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잘개미골의 뒷산인 자주봉과 약물게 마을의 문필봉의 능선이 마치 9마리의 용이 기어 내려오는 것처럼 평지뜰을 향해 뻗어 있다.
본래는 원한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해서 구론(九論)이라 불렀다고 전해지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할 때 자감동(自甘洞), 장터, 한내를 병합하여 구룡리로하여 금수면에 편입되었다가 1927년 금성면에 편입되었다. 이 당시에 구룡은 1리와 2리로 나뉘어 장텃거리와 잘개미골 그리고 대문밭의 절반은 1리, 나머지 한내와 대문밭의 남은 부분을 합해서 2리로 구분하였다.

구룡 1리의 장텃거리는 말 그대로 작은 장이 섰던 곳이다. 의흥 박씨들이 세거하는 대문밭, 한내, 잘개미골과는 달리 장터거리에는 각성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현재에도 여전히 각성촌을 이루고 있다. 구룡 5구에는 각각 의흥 박씨, 강릉 유씨, 문화 유씨, 밀양 박씨 등이 세거하면서 각 문중들이 연합하여 혼상계를 조직 운영했으며 해방 후 반상의 구분이 사라지자 각 마을이 제각기 연반계를 조직하면서 사라졌다. 두드러진 예로 해방 후 상포계는 반상(班常)이 갈라져서 따로 조직되어 운영된 것을 들 수 있다.

구룡리는 5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고, 마을 중간에 내가 흘러서 이 물을 이용해서 논농사를 짓는다. 경지면적 중 논이 39.5ha, 밭이 52.2ha이며 과수원은 0.8ha 분포하고 있다. 마을 공동사업으로는 1973년 아래장터에 하수구를 350m 부설하였으며, 1975년에는 구룡 1리에 농로를 400m신설하였고, 1980년에는 구룡 2리에 80m의 하수구를 설치, 1982년에는 구룡 1리에 30m의 마을 안길을 포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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