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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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1 14:49
[금성면] 골짜기가 넓은 마을 - 적덕리(積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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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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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역사와 사연 구룡리의 서쪽에 인접한 적덕리(積德里)는 주변의 골짜기가 넓어서 이곳에다 마을터를 닦았다고 해서 '골말'이라 불리기도 한다. 예전에 이 곳에서 붉은 흙이 많이 났다고 해서 붉을 '赤'자를 쓰고 '德'자를 써서 적덕(赤德)이라 했다. 그 후에는 쌓을 '(積)'자를 쓰고 덕'(德)'자를 써서 적덕이라 부르고 있다. 전체적인 골말 마을의 생김새가 '삼태기'형인데 입구를 제외한 주위가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다.
입구의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가 있어야 마을이 번성하게 된다는 말도 전한다. 예전에는 마을에 뽕나무와 미루나무가 많았다. 그런데 마을에 뽕나무와 미루나무가 베어지면서 밀양박씨가 쇄하고 6.25때 청년들이 많이 죽었다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적덕리에는 약수가 나서 '약물게'라고 불려지는 약물게마을과 밀양박씨가 처음 터를 잡았다는 골말로 이루어진 자연마을이 있다. 골말과 약물게 사이에 펼쳐진 남산은 일조량이 많고 아늑하며, 오리안들에는 옛날 솟대가 서 있었다고도 전한다.7) 마을제를 시행하던 정월에는 그 솟대에서 건너편 남산들에 서 있는 소나무까지 족히 50m나 되는 금줄을 쳤다고 전한다. 현재 벼농사와 고추, 담배농사 등을 하는데 담배를 하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품앗이 형태의 공동 작업을 한다.
현재 적덕리 골말에는 밀양박씨 청풍공파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 후손들은 6.25때 전란때까지 마을에 세거하였으나 6.25당시 마을청년의 절반정도가 전란의 피해를 입고 난 뒤, 마을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타향으로 흩어져 지금은 3가구만 남아있다. 청풍부사로 왔던 청풍공파의 박총선생이 부사의 임기를 끝내고, 적덕리 골말에 다래 덤불을 제치고 들어와 처음으로 마을에 배판했다. 구룡리는 양지지만 맞바람이 불고 , 골말은 음지지만 아늑하고 바람이 없어서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손들은 마을에서 어렵게 살았으며, 일제 강정기시대 큰집의 돌기와를 뜯어서 팔았다. 그 기와로 당시 주재소의 지붕을 올렸다고 한다. 6,25사변이 있은 다음 5년 뒤에는 종가를 서울 사람에게 팔고 이사를 가벼렸으나, 현재 일가인 박동준씨가 종가에 들어와 살고있다. 1950년대에는 20가구 넘게 살던 밀양박씨들이 전쟁으로 젊은이를 절반 가량 잃으면서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나면서 마을이 쇠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 골말에는 1940년에 들어온 홍씨와 월굴리에서 대성했던 강릉 이씨가 15대째 살고있고 강릉 유씨, 문화 유씨. 의흥 박씨가 다수 살고 송씨, 임씨, 천씨 등이 거주한다. 약물게 마을에는 일제시대 주로 문화 유씨, 강릉 김씨, 진주 유씨 들이 10여호 거주했으며 현재에는 밀양 박씨와 평창 이씨들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