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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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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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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면] 옹기점이 흥했던 마을 - 대류리(大柳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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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을 지나 654번 지방도를 따라 연곡 방면으로 승용차를 타고 10분을 달리면 신리(新里)를 거쳐 대류리(大柳里-한버들)에 이르게 된다. 길옆으로 넓게 펼쳐진 들을 지나 마을로 접어들면 낚시 용구와 떡밥을 판매하는 점포가 두 곳에 자리하고 있고, 휴일에는 마을주변의 낚시터를 찾는 외부인이 많다.
삼거리 쪽으로 큰 비닐하우스가 다섯 채 이상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이곳에서는 수박을 한창 출하하고 있었다. 옆에는 옥수수 창고가 있고, 창고 앞에 옥수수가 잔뜩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수송차량을 기다리는 것 같다.     
 

대류리(大柳里)는 구점·배미골·한버들로 이루어졌으며, 이곳의 마을이름은 원래 한버들이었다. 수몰 이전 마을은 한버들 41가구, 구점 20가구, 배미골 19가구가 모여 살았으며, 한버들에는 처음으로 청주 한씨(韓氏)가 입향한 것으로 전한다. 마을은 예전부터 전국에서 제일 좋은 고령토 생산지로 유명하였으며, 구점마을에서는 20여년 전까지 옹기업이 크게 성행하였던 곳이다. 규모가 큰 옹기가마가 능선을 따라 길게 자리하고 있어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옹기는 전국으로 유통되었다.
그러나 1972년 대홍수 이후 마을에 자리하던 옹기점은 점차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가마에 필요한 화목을 구하는 것조차 점차 어려워져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비봉산의 긴 계곡을 따라 펼쳐진 들이 배미골 들이고, 산의 긴 능선을 따라 길게 자리한 마을이 배미골이다. 마을이 자리한 형국이 마치 뱀의 모양과 같다고 한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수몰이전 마을은 80호(농가 78호, 비농가 2호)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마을인구는 413명(남 207, 여 206명) 이었다. 충주댐 수몰로 인근의 농경지와 가옥이 물 속에 잠기면서 마을의 인구는 뚜렷한 감소를 보이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29가구(농가 25, 비농가 4)가 거주하고 있으며 마을인구는 86명(남자 43, 여자 4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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