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16-07-12 13:08
[청풍면] 청풍면의 행정 중심지 - 물태리(勿台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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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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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태리는 청풍면소재지가 위치한 곳으로 행정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일찍이 이중환의 {擇里志}에서 밝힌바와 같이 이 곳은 청풍부가 자리하던 충북 북부권의 행정 중심지였다. 사대부의 기와집이 많고 갓 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고을이다. 강 건너로 대덕산(大德山) 의 웅장한 자태가 드러나고 마을 뒤편으로는 비봉산(飛鳳山)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안고 있다. 본래 청풍(淸風) 고을이 있던 곳이므로 청풍읍(淸風邑) 또는 읍내(邑內), 읍(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
리(商理), 중리(中里), 하리(下里)를 병합하여 읍리라해서 제천군 비봉면(飛鳳面)에 편입되었다가, 1918 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84년 충주댐 수몰로 인하여 읍리가 물에 잠기고, 마을사람들은 새로운 이주촌인 현재의 물태리로 이주를 단행하였다. 망월산의 중턱인 갓고개에 자리하는 마을은 현재 142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 중 농가 23가구, 비농가 119가구로 주민의 대부분이 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청풍의 역사와 깊은 상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원인은 1984년 충주댐 건설로 인한 자연·환경적 요인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마을주민은 대부분 수몰 전 읍상·하리 주민이 대부분이며 인근의 용곡, 연론, 신리, 광의, 교리 등지에서 이주하였으며(1982∼1984년), 제천시가 이주촌을 완성하면서 마을 중심지를 상가로 지정하였다. 이 때 마을민의 대부분은 영세한 농민층이었기 때문에 콘크리트 슬라브형식의 2층 건물을 갖추어야만 했다. 현재 마을에서 특별한 양식의 건축물을 볼 수 없는 것도 새로운 이주촌에 적용된 행정력의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본래 청풍면의 중심지는 현재의 물태리 아래에 펼쳐진 청풍읍이었고, 수몰로 인하여 약 200m정도 올라온 산중턱에 새로운 이주촌을 형성하게 되면서, 농토의 많은 부분이 유실되었다(총 면적 578.5ha 중 田 33.7, 畓 1.4, 임야 및 기타 543.4ha). 생업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마을민의 대응전략은 청풍호와 주변의 수려한 산세를 관광 상품화하여 관광수익의 증대를 모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을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를 가늠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다만 조선시대 이전에 집촌(集村)을 이루고 있었으며, 마을은 초계 정(鄭)씨와 청풍 김(金)씨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 지역이 역사의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조선초기라 할 수 있다. 강원도 오대산에서 흘러내린 냇물이 모여 정선-영월-단양-청풍-목계-충주를 이어 서울 마포나루로 연결되는 남한강의 상류에 위치하여 수로를 통한 교역이 조선초기에 이미 활성화되어 있었다. 또한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수로를 통한 운송과 교역품이 증가하면서 이 지역은 남한강 수계권의 중심지로 그 중요성이 커진다. 일찍이 왜구의 침범과 약탈로 조세의 운송이 어렵게 되자, 조선왕조는 기존의 육로중심 체계에서 강을 중심으로 하는 수로체계를 강화하게 된다. 경북 북부에서 거두어들인 조세를 죽령(竹嶺)고개를 넘어 이곳으로 집결시켰고, 멀리 강원도와도 수로를 통해 연결되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항기 이후 1940년대까지 이 곳에는 각종 해산물과 소금배들이 한벽루에 정박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인근의 성내장·안암장과 함께 읍내장이 유명하였으며, 우(牛)시장 또한 성황을 이루었다. 읍리가 수몰되면서 지금의 갓고개에 새롭게 정착한 물태리는 읍리에서 50여가구, 물태리에서 15가구, 기타지역에서 40여 가구가 이주하여 현재의 이주촌을 형성하였다. 본래 청풍면의 중심지였던 읍리(邑里) 전역이 충주댐 담수로 모두 수몰되어 사라진 지금 청풍면의 중심지는 물태리로 자리를 옮겼다. 새로운 이주촌을 형성하여 이주를 단행한지 14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변환된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공동체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