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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문화원 마을기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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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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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면] 사창이 있던 마을 - 사 곡 리(社谷里)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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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리에서 21번 시도를 타고 서쪽으로 가면 구룡2리를 지나 바로 사곡리와 만날 수 있다. 마을의 곳집은 소사창과 대사창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상고개 오르는 곳에 가마집이 있다. 가마집에는 가마 2개와 기타 혼례에 필요한 물품이 보관되어 있다.
사곡리 마을에서는 시장을 보러 갈 때 지금의 구룡리 면사무소 길과 한티고개를 넘어 제천장을 보았다고 한다. 매상고개는 지금의 활산리로 통하는 고개였고, 충주로 통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이 고개는 박달재로 통하는 길이기도 하였다. 
 

사곡리는 조선시대 사창이 있었다 해서 대·소 사창골이라 불리며 크게 대사창, 소사창으로 나뉜다. 청풍군 북면에 위치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금수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금성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은 1반 곡담골에 16호, 2반인 양지땀에 12호, 3반인 양지땀에 13호, 4반인 곡담골에 16호가 살고 있다. 양지땀을 대사창이라 부른다. 대사창에는 강릉 김씨의 18대조인 어른이 나라에 난(亂)이 나자 소나무 송(松)이 든 곳으로 피난해야 산다고 해서 송(松)자가 있는 대사창과 월림으로 들어왔으나 월림에는 물이 적어서 다시 이 곳에 모여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판서공파 40세인 김대래씨 일가가 20여호 살고 있다.

문화유씨는 서울에 거주하던 13대조 어른이 청풍으로 낙향해서 홍석리, 구산리 등지에서 세거하다가 5대조인 유봉기 어른이 대사창으로 들어왔다. 이 어른은 가정훈학을 많이 하시고 특히 3대조 유지혁 선생이 한학을 잘 아셔서 마을 뒤 은행나무 옆에 '양암재(陽菴齋)'라는 서당을 열어서, 돌아가시던 해인 1954년까지 월림, 활산, 진리, 월굴 등지에 많은 제자를 두었다. 보통 15명 가량이 인암제에서 수학하였다. 84년 청풍의 장선에 있던 '병산영당'을 이 마을로 옮겨야 된다고 주장해서, 병산영당을 마을로 옮긴지 4∼5년 된다. 현재 사곡리에는 문화유씨가 3호 살고 소사창에는 청풍김씨가 15호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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