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16-07-11 14:47
[금성면] 수몰의 아픔을 간직한 월굴리(月屈里) - 석 동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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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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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골 마을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월굴리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자연 마을이다. 현재에는 '석동골'이라는 본래 지명 대신에 월굴리(月屈里)로 불린다. 마을의 오른쪽에는 대덕산의 가장 아랫자락이, 왼쪽으로는 문화산의 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땅고개를 경계로 활산리와 구분된다. 월굴리 동강의 가장 상류에 위치한 마을로 개울 양옆으로 많은 골짜기가 마치 뱀이 구불구불 기어가는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뱀이 머리를 청풍으로 두고 꼬리는 제천을 향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한다. 마을에는 옛날에 원(院)이 있던 흔적이 있으며 원(院)이 생긴 이후 진주 유씨가 다래 덤불을 치고 들어와 마을을 개촌(開村)했다고 전해온다. 강릉김씨가 7대째, 안동권씨가 4대째 거주하고 있다. 돌이 많은 마사토가 대부분인 이 마을은 농경지의 대부분이 밭으로, 마을민은 대부분 양잠, 고추, 담배, 오이, 축산, 벼농사를 한다. 해방 후 70년대 초까지는 활발하게 화전을 개간하였으며, 이 당시 사람들은 주변의 골짜기마다 3∼4가구 정도씩 거주했다. 1950년에 6.25 전쟁일 발발하자 1·4후퇴를 하던 미군들이 마을을 소각시켜 마을에서는 이후 새롭게 집을 지었으며 "소개명"으로 마을의 중심부에 모여 살게 되었다.
마을에는 현재 22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강릉 김씨가 12가구로 주류를 이루고 의흥 박씨, 안동 권씨, 김해 김씨 등이 세거한다. 1910년 이전까지 은광(銀鑛)을 한곳이 많아 '은점골'·'채취골'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있고, 호랑이가 안가를 잡아먹었다는 '안가 먹은터', 옻나무가 많았다던 '옻쟁이골', 화장을 했던 화장골 등과 '어둔골'·'괴석골' 등이 있다. 이 외에 70년대 후반까지 지소공장이 있었다하고 지소골이라 불리는 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