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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제천문화원 마을기행 입니다.

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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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면] 입석리[立石里]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2,697)  
입석리는 대부분의 지대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다. 본래 제천군 북면 지역으로서, 선돌이 있으므로 ‘선돌’, ‘선돌 배기’ 또는 ‘입석(立石)’이라 하였다. 옛 지방 하급 행정 구획의 하나인 부곡(部曲)을 두어 ‘입석부곡’이라 하다가, 부곡은 폐지되어 ‘입석’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당곡리(堂谷里)를 병합하여 입석리라 해서 송학면에 편입하였다.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승격에 따라 제원군 송학면 입석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통합으로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당골, 잣디, 신기 마을 등이 있다.

◎ 입석리 지명유래

⦁가꼴 : 입석리 맨 끝에 있는 골짜기.
⦁고수모퉁이 : 당곡 북동쪽에 위치한 골짜기
⦁곤배산 : 새터말 뒤에 있는 산, 산형이 고무래 정(丁)자처럼 생겼다고 함.
⦁광암 : 당골 북쪽 지역에 위치한 넓은 바위.
⦁굼뜰 : 입석 남쪽 구렁에 있는 들.
⦁금뜩보 : 굼뜰에 있는 보.
⦁넘어당꼴 : 당골 동쪽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골짜기.
⦁넘은난꼴 : 당골 동쪽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골짜기.
⦁당꼴[당곡동] : 입석 북쪽에 있는 마을. 해당화(棠) 나무가 있다고 당곡(棠谷), 당골로 불려    짐.
⦁당산제를 지내던 당나무가 있었음.
⦁당곡동(棠谷洞) → 당꼴.
⦁둔짐산 : 당꼴 북쪽에 있는 산. 봉우리가 둥그랗게 되었음.
⦁둥지산[둔금산(屯金山)] : 당꼴 북쪽에 있는 산, 봉우리가 둥지처럼 되었음.
⦁모산구랭이 : 입석 못 안쪽에 있는 구렁진 골짜기.
⦁밭선돌 : 선돌 바깥쪽에 있는 들.
⦁밭선돌보 : 밭선돌에 있는 보, 몽리 면적 2,500평.
⦁백평(栢坪) → 잣들.
⦁본말 : 입석리의 본 마을.
⦁사기장골 : 입석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사기점이 있었음.
⦁사슬티 : 사실고개, 사슬치라고도 함. 송학면 입석리 북쪽에 있는 당골마을에서 강원도 영월  군 주천면 용석리 사슬티로 가는 고개.
⦁사슬티 → 사실고개.
⦁상산마루 : 당골 앞쪽에 있는 작은 산능선. 교회가 들어섬.
⦁새텃말 : 공장이 건설되면서 마을이 없어졌음.(아세아시멘트 동쪽에 위치함)
⦁선돌들[입석평, 잣디들] : 선돌에 있는 들.
⦁솔모루 : 입석 서남쪽에 있는 모롱이.
⦁솔모루뜰 : 솔모루 앞에 있는 들.
⦁안선돌 : 선돌 안쪽에 있는 들.
⦁안선돌보 : 안선돌에 있는 보. 몽리 면적 2,000평.
⦁양쳔개 : 자라굴
⦁입석(立石) → 선돌.
⦁입석역(立石驛) : 새터말 남쪽에 있는 태백선 기차역.
⦁자후동 → 잣디.
⦁잔다리 : 입석 서쪽에 있는 다랑논.
⦁잣들[栢坪] : 입석 서남쪽에 있는 들. 잣나무가 있었음.
⦁잣디{자후동} : 잣들 뒤에 있는 마을.
⦁잣디들 → 선돌들
⦁큰골 : 입석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

◎ 입석리 문화유산

⦁당골 지석묘
 송학면 입석리에서 영월군 주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흥림사 입구가 있고, 이 절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 소나무 아래에 지석묘가 위치하고 있다. 지석묘의 덮개돌(370X265X20~50cm)의 형태는 긴네모꼴의 편평하고 넓쩍한 형태이다. 북쪽 면에는 너비 6cm 쯤의 쐐기 자국이 5개 정도가 있다. 긴 방향은 동서방향이며, 남쪽으로는 당곡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절로 들어가는 길을 확장하면서 원래의 위치에서 움직여졌다.

⦁선돌
2001년 2월 2일 충청북도기념물 제 117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입구 ‘선돌백이’라 부르는 길옆에 세워져 있는 3단의 고인돌이다. ‘입석리(立石里)’라는 마을의 이름으로 미루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38번 국도를 따라 제천에서 영월로 가는 길에 송학면 입석리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입석이 위치한다. 입석의 앞쪽으로는 시곡천이 흐르고 있으며, 서남쪽을 향해 입석이 서 있다. 입석은 전체3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7개의 돌들이 쌓여 형태를 이루고 있다. 맨 아래에는 높이 66cm의 낮고 폭이 넓은 3매석이 흡사 지대서거럼 놓인 위에 높이 96cm, 폭 97cm와 116cm의 밑높이 40cm에 폭 140cm, 둘레 654cm 1석이 올려져 있어 전체가 7매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두 마고할미가 힘자랑하며 던진 돌이 포개져서 고인돌이 생겼다고 한다. 주민들은 고인돌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으며 1974년부터 ‘선돌회’를 조직하여 보호⦁보존하고 있다. 매년 음력 10월에 주민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고인돌로 평가되며 민속학 및 국문학적으로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천시에서 관리한다.

◎ 입석리 이야기

⦁선돌의 유래
까마득한 옛날 충주 언저리를 나돌아다니던 마고(麻姑)할미들이 우연하게 이곳에서 마주쳤다. 평소 사이가 나빠 으르렁대던 두 마고할미는 서로 힘자랑을 하게 되었다. 한 마고할미가 옆에 있던 큰 돌을 냅다 던졌다. 그 돌은 논 가운데로 날아가더니 땅 속에 박혀 우뚝 섰다.
 이것을 본 다른 마고할미가 역시 커다란 돌을 집어 들더니 앞서의 할미가 던진 곳을 향해 던졌다. 그 돌은 하늘을 날아 먼저 번에 던진 돌 위에 떨어져 두 개의 돌이 하나의 돌처럼 되어 버렸다. 결국 여기서 벌인 두 마고할미의 힘내기는 승부를 가르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으며 마고할미는 각기 제 갈 길로 가버렸다. 마고할미가 던진 돌이 입석리의 선돌이다. 지금도 이 선돌의 중간에 층이 진 것 같이 보이는데 두 개의 돌이 겹쳐 있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 입석리 마을신앙 - 입석리 선돌제

입석리 선돌제는 1974년 11월 25일 ‘선돌회’라는 친목회가 발족되어 운영되던 중 1986년 추수가 끝난 후 길일을 택하여 ‘선돌바위’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지역의 발전과 주민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선돌제’를 지내기로 한 것이 시초이다. 그 당시 선돌 친목회에서 1986년 10월 29일 제1회 선돌제를 시작하였다. 1991년 10월 24일 제6회까지 선돌제를 봉행하고, 마을 주관행사로 이관하여 1992년 제7회 선돌제를 진내 후 중단되었다. 이후 노인회에서 선돌제를 부활시켜 1994년 제8회 선돌제를 지낸 후 2009년 10월 28일 수요일 오전 11시에 제23회 선돌제를 지냈다. 현재 선돌제는 ‘입석 선돌문화제 보존위원회’에서 주관하고 있다.

◎ 아세아시멘트 제천공장

 아세아시멘트는 1957년 4월 27일 경원산업(주)으로 출발하여 1965년 충북시멘트공업(주)로 상호를 변경하고, 1973년 아세아시멘트공업(주)로 다시 변경하였다. 제천공장의 경우, 1961년과 1962년에 용석광산을 등록하였으며, 1964년 송학광산 종합개발계회을 수립하였다. 1965년 제천공장을 기공하였고, 1966년 15동 30가구 규모의 사택과 연간 4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준공하였다. 1974년 KS사후심사 A급 공장으로 지정을 받았으며, 1976년 연간 17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으로 확장하였다. 1982년 다시 연간 230만톤을 생산할 수 있게 확장하고, 포틀랜트시멘트 1종 A급 KS표시 허가를 흭득 하였다. 1987년에는 원격자동화시스템을 도입하였으며, 포틀랜트시멘트 3종, 5종 KS표시 허가를 흭득하였다. 1990년 연간 450만 톤을 생산하라 수 있도록 확장하였고, 1993년 석회석 생산 5,000만 톤, 1997년 클링커 생산 5,000만 톤을 돌파하였다. 1999년에는 연간 50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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