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26 14:45
[봉양읍] 마곡리[馬谷里]
글쓴이 :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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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곡리[馬谷里]
마곡리는 본래 제천군 근좌면 지역이었다. 지형이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곧 ‘목 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라고 하여 ‘마실’ 또는 ‘마곡’이라 하였다. 또한 삼국시대 때 전쟁에서 사용할 말을 기르던 마장(馬場)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여 ‘마곡’이라 불리었다고도 한다. 마곡은 삼국시대 때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이었으며, 지금도 경계석으로 추정되는 선돌[立石]이 마을 어귀에 자리하고 있다. 마곡리는 토지가 비옥하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풍수해(風水害)가 없는 마을이다. 양지마곡(陽地馬谷)과 음지마곡(陰地馬谷)의 두 마을로 나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은 각각 ‘양마곡’과 ‘음마곡’이라고 부른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두 마을을 병합하여 ‘마곡리’라 하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하였다. 1980년 4월 1일 제천시 봉양면이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시군통합과 동시에 봉양면이 읍으로 승격하며 제천시 봉양읍 마곡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곡리는 제천시 봉양읍내의 다른 마을에 비하면 면적이 협소하다. 1960년 대에는 80가구 정도가 살았으며, 현재는 약 50여 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벼농사와 보리농사를 주로 하였으며, 일부 골짜기에서는 화전(火田)을 하여 조[서숙]와 메밀을 생산하였다. 1970년대 이후에 와서는 고추농사를 많이 한다. 1970년대 당시만 하여도 마곡리에서 생산되는 고추가 유명하여 “마곡리 이름을 붙여야지 많은 값을 받았다.”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최근에도 고추농사를 많이 하고 있지만, 기후와 병 때문에 생산량이 많이 줄었다.
마곡리에서 제천시내까지는 마을 서낭당이 위치해 있는 ‘서낭당고개’를 넘어서, 마을의 길이가 오리(五里)나 되어서 ‘오릿골’이라고 부르는 마을을 지나 다녔다. 그러나 현재는 서낭당고개를 지나 제천시내로 가는 길은 이용하지 않는다. 새롭게 길이 나고서는 삼거리마을을 통해서 제천 시내까지 오고 간다. 차가 없었을 때도 제천 시내까지 장을 보러 다녔는데, 쌀 한 말을 지고 약3시간 정도 거리는 길을 걸어서 다녔다고 한다.
◎ 마곡리 지명유래
⦁높은 터 : 은비말 동쪽 높은 지대에 있는 마을.
⦁독가맛골 : 음지말 위에 있는 마을. 지형이 가마처럼 생겼다 함.
⦁마장간 : 마곡리에 있는 마을.
⦁세거리고개 : 양지말 동쪽에서 세거리로 가는 고개.
⦁솔치-고개 : 양지말 동쪽에서 삼거리 솔치로 가는 고개.
⦁솔티-고개 → 솔치고개.
⦁양마곡(陽馬谷) → 양지말.
⦁양지마곡(陽地馬谷) → 양지말.
⦁양지마실 → 양지말.
⦁양지말[양지마실, 양지마곡, 양마곡] : 마곡리 북쪽 양지에 있는 마을.
⦁음마곡(陰馬谷) → 음지말.
⦁음지마곡(陰地馬谷) → 음지말.
⦁음지마실 → 음지말.
⦁음지말[음지마실, 음지마곡, 음마곡] : 마곡리 남쪽 음지에 있는 마을.
⦁칼바우 : 독가맛골 아래에 있는 바위, 마곡입석을 말함. 칼처럼 뾰족하게 생김.
◎ 마곡리 문화유산
⦁선돌[立石]
구곡리에서 마곡 쪽으로 가다보면 길 왼쪽으로 ‘마곡리’ 이정표가 있으며, 이 이정표에서 구곡천을 바라보면 돌바위골의 산 아래쪽 평지에 입석 1기가 자리하고 있다. 입석의 서 있는 방향은 남서방향으로, 구곡리 입석과 마주보고 있다. 크기는 316x140x52cm이며, 암질은 거정화강암이다. 입석은 끝이 뾰족한 남성 입석이며, 남서면에는 왼쪽으로 간 구멍이 1개 있으며, 가장자리를 따라 5번 정도 뗀 손질이 베풀어져 있다. 뒷면에는 아래쪽에 모두 3개의 구멍(지름5cm)이 같은 높이로 분포하며 모두 간 구멍이다. 그리고 위쪽으로 길이 30cmX너비 20cm 정도 크기로 약간 오목한 떼인 면이 있다. 칼처럼 생겨 일명 ‘칼바위’라고도 하며, 마을 주민들은 지역 경계를 표시하던 경계석으로 인식하고 있다. 금줄을 치고 위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기자바위로도 알려져 있다.
⦁양마곡 서낭당
양마곡 서낭당은 마을 뒤편에 있는 서낭당고개에 위치하고 있다. 슬레이트 지붕에 벽은 시멘트로 되어 있다. 서낭당 입구에 금줄이 쳐져 있으며, 내부에는 ‘城隍神位’이라고 쓰여진 위패가 모셔져 있다. 양마곡 서낭당에서의 당고사는 매년 음력 정월 14일로 정해져 있다. 제물로는 돼지머리⦁백설기 한 시루⦁밤⦁대추⦁곶감⦁사과⦁배⦁포 등을 진설한다. 제물의 준비는 서낭당 바로 아래에 있는 작은서낭(약수터)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4년마다 ‘대고사’라 하여 통돼지를 잡아 올리는 것이 양마곡 당고사의 특징이다. 제의의 진행은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소지 - 음복 순으로 이루어진다.
⦁음마곡 서낭당
음마곡 서낭당은 금성면 활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초입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서낭목으로 느티나무 3그루가 있으며, 지붕은 청기와로 벽은 나무판자로 되어있다. 서낭당 내부에는 ‘성황신위(성황신위)’라는 위패가 있고, 20cm 정도의 돌이 신체로 모셔져 있다. 음마곡 서낭당에서의 당고사는 음력 정월 초에 날을 받아서 지낸다. 생기를 봐서 제관 및 축관을 선정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금줄을 쳐서 금기를 지킨다. 제물로는 돼지머리⦁백설기 한 시루⦁⦁뫼⦁탕⦁포⦁밤⦁대추⦁곶감 등을 진설한다. 제의의 진행은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소지 - 음복 순으로 이루어진다.
◎ 마곡의 민속놀이 - 풍물
2006과 2007년 충북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한 파대놀이 시연팀에서 마곡리가 풍물을 맡았다. 2010년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하여 장려상을 받았다. 예전에 마곡풍물은 제천시에서 유명하였다고 한다. 제천 시내에서 열리는 행사에 나갈 때마다, 제천 시내의 풍물들이 마곡풍물을 마중 나오곤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전승이 중단되었으며, 2006년부터 다시 풍물을 꾸렸다. 예전, 마곡 풍물은 꽹과리 2명, 북 1명, 징 1명, 새납 1명, 법고 8명, 농기 4명과 포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풍물을 한창 할 때, ‘차덕민’, ‘차일재’ 형제가 상쇠를 하였다. 특히 ‘홍은표’라는 분은 새납을 잘 불었는데, 연주할 때 “숨을 안 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잘 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다.
마을에서 풍물을 놀 때는 정월 대보름, 논매기, 호미씻이, 추석 등이었다. 모심을 때는 풍물을 놀지 않았다. 정월대보름에는 걸립을 다녔는데, 범위는 마을로 국한되어 있었다. 마곡풍물이 잘 되는 것은 다른 마을에 비해 단합이 잘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곡 풍물은 삼대가 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풍물경연대회에 마곡풍물이 나가면 삼층 무동을 만들어 삼대가 나가서 놀았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말이다.
◎ 봉남분교와 제천예술인마을문화학교
제천예술인마을문화학교는 폐교된 봉양초등학교 봉남분교에 자리하고 있다. 봉남분교는 1945년 6월 25일 설립되어 48회에 걸쳐서 1,85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1999년 9월 1일 폐교되었다. 제천예술인문화학교에서는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도예, 회화, 공예, 사진, 토우, 풍물 등을 가르치고 있다. 2007년 문화관광부의 문화학교로 지정됐으며, 연인원 2천여 명을 수용해 지역 문화 창작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