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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제천문화원 마을기행 입니다.

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2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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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양읍] 연박리[硯朴里] [상]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2,985)  
10. 연박리[硯朴里]

연박리는 본래 제천군 근좌면 지역으로서, 박달재로 가는 벼랑길이므로 ‘벼루박달’ 또는 ‘연박리’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대리(新垈里), 오전리(五錢里), 오리동(五里洞)을 병합하여 연박리라 하고, 1920년 9월에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이 제천시 승격에 따라 제원군 봉양면 연박리가 되었다가, 1991년 1월 1일 제천시 봉양면이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시군통합과 동시에 봉양면이 읍으로 승격하며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가 되었다. 연박리는 행정단위로 연박1리에서 4리가 있다. 2리에만 현재 66가구가 살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없고, 쉽게 구전되는 이름으로는 새둑, 벼루박달, 도장골, 오리골, 닷도니 마을 등이 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반 이상이 노인이기 때문에 주로 농사를 짓기는 하지만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가구는 40%~50%정도이다. 연박리의 주된 성씨는 김씨, 이씨이다. 특산물로는 고추, 담배, 사과 등이 있다.

◎ 연박리 지명유래

⦁거릿담[주막거리] : 벼루박달 동쪽 길가에 있는 마을. 주막이 있었음.
⦁거북바우 : 유선우 앞 물 가운데 있는 바위.
⦁고대(高垈) : 노픈터.
⦁골안 : 벼루박달 동쪽 산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교곡동(矯谷洞) → 다리목.
⦁너메닷돈 : 닷돈 너머에 있는 골짜기.
⦁노픈터 [고대] : 송수골 북쪽 높은 지대에 있는 골짜기.
⦁다랑고개[다랑티] : 오리동 남쪽에서 구곡리로 가는 고개, 굽이가 많음.
⦁다랑티(多郞티) → 다랑고개.
⦁다리마을 : 다리목.
⦁다리목[다리마을, 교곡동] : 주포교 옆에 있는 마을.
⦁답둔(沓屯) → 닷돈이.
⦁닷돈 → 닷돈이.
⦁닷돈이[닷돈, 답둔, 오전] : 벼루박달 동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단 돈을 주고 얻은 명당이    있었다고 함.
⦁도장곡(道藏谷)→ 도장골.
⦁도장골[도장곡] : 닷돈이 동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도장처럼 깊숙하고 아늑함.
⦁독바우 → 봉바우.
⦁독바우 → 독바우 앞에 있는 들.
⦁마당바우 : 용바우 아래에 있는 바위, 넓고 편편함.
⦁박달넘이고개 [박달재] : 벼루박달 서쪽에서 공전리로 가는 고개.
⦁박달한우마을 : 2000년에 건립한 송수골 입구에 있는 축산물종합처리장.
⦁박달재 → 박달넘이고개.
⦁벼루박달 → 연박리.
⦁봉바우[봉암, 독바우] : 벼루박달 어귀 냇물 가에 있는 바위. 벼루박달에 살던 김경수의 꿈  에 이 바위 앞에 병아리가 모여 놀더니 갑자기 병아리가 봉이 되에 날아갔다 함. 모양이 독  처럼 생겼다 하여 독바우라고도 함.
⦁봉암(鳳岩) → 봉바우.
⦁새둑[신고동] : 벼루박달 동남쪽 둔덕에 새로 된 마을.
⦁송수골[송수동] : 숲담 서쪽에 있는 마을. 소나무가 울창하였음.
⦁송수동(松樹洞) → 송수골.
⦁숲담[신대리] : 벼루박달 북쪽에 있는 마을. 숲이 울창하였다 함.
⦁신고동(新皐洞) → 새둑.
⦁신대리(新垈里) → 숲담.
⦁신주바우 → 벼루박달 서남쪽에 있는 바위. 어느 난리 때 이 바위 밑에다 신주(神主)를 감춰  두고 피난하였다 함.
⦁아들바위 : 임신한 여자가 계곡 건너편에서 돌을 던져 위에 얹히면 아들을 낳고 떨어지면    딸을 낳는다고 한다. 곧 골안 아들바위는 기자점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있다.
⦁연박(硯朴) → 연박리.
⦁오리동(五里洞) → 오릿골.
⦁오릿골[오리동] : 도장골 남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오전(五錢) → 닷돈.
⦁왁새매가 → 도장골 북쪽에서 주포리로 가는 고개. 지형이 왁새(왜가리)처럼 생겼다고 함.
⦁용바우 [용암] : 새둑 남쪽 냇물 가에 있는 바위, 모양이 새처럼 생겼는데, 영검하다 하여    기우제를 지내며, 아이를 바라는 부인들이 음식을 차려 놓고 빌기도 함.
⦁용암(龍岩) → 용바우.
⦁원연박(元硯朴) : 연박리의 원 마을.
⦁유선암(游仙岩) : 벼루박달 앞 냇물 가에 있는 바위. 위가 넓고 편편하여 놀기에 좋으며, 밑    으로는 냇물이 흐름.
⦁장잣벌 : 용바우 앞에 있는 버덩. 장자가 살았었다 함.
⦁주막거리 → 거릿담.
⦁주맛거리 중바위 : 주막거리 마을 뒷산 아래에 세워져 있는 바위다. 마을 주민들은 중(스님)    처럼 생겼다고 해서 ‘중바위’ 라고 한다. 마을 주민들 중에는 중바위를 개인적으로 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한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이 가서 빌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는    이야기도 지니고 있다.
⦁주포교(周浦橋) → 주포리의 ‘주포교’
⦁파병암(坡甁岩) : 다리목 남쪽 냇가에 있는 바위. 울퉁불퉁하여 병을 깨뜨려 놓은 것 같다고    함.

◎ 연박리 문화유산

⦁장충사(長忠祠)
 충주시 산척면 가정에 있던 유성찬(柳星燦)의 묘를 이장하면서 함께 재실을 건립하였다. 재실 좌측에 세워진 ‘유은수송덕비(柳殷秀頌德碑)’ 에 따르면 재실에는 고려 중엽 김자광록대부중서령좌우위상장군(金紫光祿大夫中書令左右衛上將軍)을 지내고 진강부원군(晉康府院君)에 봉작된 관진주비조(貫晉州鼻祖)의 17세손인 판서공(判書公) 유지온(柳之溫) 이하 9위를 모셨다. 송덕비 전면에는 ‘진주류공서암은수송덕비(晉州柳公曙岩殷秀頌德碑)’라 새기고 있는데, 유은수라는 분이 주관하여 지금의 재실과 진주유씨 문중묘소를 이곳으로 이장하였기에 송덕비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재실 왼쪽 위로 진주 유씨 문중의 묘소들이 위치하고 있고, 그 가운데 절충장군 전라우수사 유성찬(折衝將軍 全羅右水使 柳星粲)의 묘가 있다. 장충사에 있는 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여기 충북 제천시 연박리에 아담하면서도 엄숙히 서있는 이 장충사는 어느분을 모실 사당인가? 고려중엽 김자광 녹대부중서령좌우위상장군을 지내시고 치강 수원군에 봉작되신 관진주비조휘정의 칠세손 판서공취지습하구위를 모신 사당이다. 서기 일구구오년 십일월에 준공하여 동월 이십육일(음 시월 초삼일)에 위패 봉안과 함께 첫향사를 모셨으니 아! 아름답고 장하도다! 묘소도 사당도 없이 향화를 받들지 못해 죄스러워하고 민망히 여기던 자손들의 숙원을 이제야 풀었으니 자손들의 그 감회와 기쁨 무엇에 비할까! 구천을 해매시던 열조부군들이시어 엎드려 비옵나니 굽어 살피시고 이곳에 편안히 의지하소서. 천기지목도 만파지수도 그 근원은 하나이니 동근동조의 자손들이라면 누군들 번성하고 영달함을 바라지 않으리. 나무가 무성하고 꽃피고 열매 맺기를 원하는 자 누군들 뿌리의 소중함을 모를까? 열심히 가꾸고 복돋듯 내 조상 내 뿌리를 위하는 자손들에게 영광 있을 지어다.
 그러나 뜻만 있고 재력 없거나 재력 있으나 뜻 없으면 백년하청이니 그래서 일찍이 비완 유지라. 구양공이 갈파하지 않았던가.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기다리는 사람 있음을 말함인즉 이 사당의 주벽이신 판서공의 십팔 대손 은수 씨가 바로 그 사람이니 이름 그대로 무리중의 큰 중심이요 빼어난 인물이로다. 공은 일구이구년 충북 제천 백운면 월리재현에서 아버님 휘원익과 어머님 순응 안 씨의 외아드님으로 태어나 어려수부터 영매 하였다. 일제말기 서울의 경성 공업학교에서 삼학시학생 보국대로 흥남 비료 공장에 징발되어 학업을 중단한 채 광복을 맞아 귀향하여 농사 하다가 군 제대 후 운수사업에 종사하여 자수성가하니 금강고속주건립으로 첫 제향을 모시고부터 마음속깊이 직조님들 사당건립을 굳게 결심하고 이를 위한 종재 조성에 힘을 기울였다 때가 이르러 일구구오년 봄이고 폐사와 터 칠천 여 평을 거금으로 매입 우선 광주 홍천 산척 등에 흩어져 있던 사대조이하 십대조 까지의 선대 묘소를 동파손인 지수 장수 해진 해선 해문 재향 문향제씨의 협조 하에 이곳 후원 한곳에 이장하여 실묘방지와 봉제사를 편케하고 이어 이 장충사 건립에 착수하니 공의 숭조정신에 감동한 동파비계 자손들이 순모 홍제하여 일심협력 마침내 누백 년의 숙원을 풀었다. 아울러 남북분단으로 임진강 건너에 조상묘소를 두고도 향화를 받들 길 없어 애태우던 작은댁 파종신 서령공까지 함께 모셔 그 자손들의 한마저 풀어주시어 찬사 또 한 이구동성이니 어즈버 공이 아닌들 어찌 이런 쾌사가 이루어졌으랴? 이에 우리 자손 일동은 큰 공을 잊을 수 없어 여기에 공을 길이 기리고 후손들에게 알리고 저 이 송덕비를 세우게 되었노라. 판 서공 이 십대손 관향이 나에게 이 흥덕비문을 지어 달라 청하니 잔학비재로 고사했으나 동종간의 경사요 사당건립과 첫 봉형부터 일비지역을 한터라 이불문이불호하여 감히 우와 같이 출사로써 면책하노라.

진주유씨 대종회 수석 부회장 안산 유진성 근식

단기 사천삼백삼십일년(서기천구백구십팔년)
십월월 십오일
진주유씨 판서공파 자손일동 건립.

⦁벼루박달 서낭당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로 벽을 만들었다. 충주로 가는 철도인 충북선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서낭당 내부에는 위패가 없고 제단만 만들어져 있다. 벼루박달 서낭당에서의 당고사는 매년 음력 정초에 날을 받아서 지낸다. 제물로는 돼지머리⦁백설기 한 시루⦁밤⦁대추⦁곶감⦁포 등을 쓰며, 술은 약주를 쓴다. 당고사 날을 받으면, 제관 및 축관을 먼저 선정하고, 금줄을 쳐 금기를 지킨다. 당과를 지낼 때 마을 주민 여러 명이 참석한다. 제의의 진행은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소지 - 음복 순으로 이루어진다.

⦁골안 할아버지 서낭당
 슬레이트 지붕에 벽은 나무판자로 되어 있으며, 아래 부분에는 돌로 둘러 놓았다. 내부에는 ‘령성황지신중위(靈城隍之神中位)’라고 쓰여진 위패가 있다. 제관은 한 명이며, 생기를 봐서 선출한다. 골안 할아버지 서낭당에서의 당고사는 매년 음력 정월 4일에 지낸다. 예전에는 정월과 10월 초에 날을 받아서 지냈었다고 한다. 제의에 드는 기금은 마을 기금으로 충당한다. 제물로는 백설기 한 시루⦁탕⦁포⦁⦁밤⦁대추⦁곶감 등을 진설한다. 제의의 진행은 유교식 절차에 따라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소지 - 음복의 순으로 한다.

⦁골안 할머니 서낭당
당집은 없으며, 느티나무가 서낭목이다. 느티나무 아래에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할아버지 서낭당에서의 당고사가 끝나면 할머니 서낭당에서의 당고사를 지낸다. 제물 및 제의의 절차가 할아버지 서낭당과 동일하다. 다만 할아버지 서낭보다 떡시루가 작다는 것이 특징이다. 곧 할아버지 서낭당에서의 시루에는 쌀 한 말을 하고 할머니 서낭당의 시루에는 세 되를 한다.

⦁새둑 서낭당
지붕은 슬레이트로 벽은 시멘트로 되어 있다. 서낭당 내부에는 ‘성황지신위(城隍之神位)’라고 쓰여진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그 옆에 곰방대가 놓여져 있어, 마을 주민들이 할아버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새둑 서낭당의 당고사는 날을 잡아서 지내는 데 음력 정월 5일 안에 지낸다. 먼저 생기를 봐서 제관 및 축관을 선정하고 금줄을 친다. 제물로는 돼지머리⦁백설기 한 시루⦁밤⦁대추⦁곶감⦁포⦁탕 등을 진설한다. 제의의 진행은 초헌 - 독축- 아헌 - 종헌 - 소지 - 음복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주막거리 서낭당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로 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잣나무 한 그루가 있고, 시멘트로 제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수부제를 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낭당 내부에는 ‘성황지신위(城隍之神位)’라고 쓰여진 위패가 놓여 있다. 주먹거리 서낭당에서의 당고사는 매년 음력 정월 3일 밤 9시에 지낸다. 제의에 드는 비용은 마을기금으로 충당한다. 제물로는 돼지머리⦁백설기 한 시루⦁뫼⦁탕⦁포⦁밤⦁대추⦁곶감⦁고사리나물⦁도라지나물 등을 진설한다. 제의의 진행은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소지 - 음복의 순으로 진행된다. 당고사가 끝나고 서낭당 옆에 있는 제단에 떡, 과일 등을 조금 얹어 놓는다고 한다.

⦁닷돈이 서낭당
 소나무가 서낭목이며, 슬레이트 지붕에 벽은 블록으로 되어 있다. 서낭당 내부에는 ‘성황지신위(城隍之神位)’라고 쓰여진 위패가 있고, 제단 아래에는 가로 20cm, 세로 30cm 크기의 돌이 있다. 바닥에는 마른 짚이 깔려져 있다. 닷돈이 서낭당의 당고사는 매년 음력 정월에 날을 받아서 지낸다. 생기를 봐서 제관을 뽑으면, 제일 먼저 금줄을 쳐서 금기를 지킨다. 제물로는 백설기 한 시루⦁돼지고기⦁포⦁탕⦁밤⦁대추⦁곶감 등을 진설한다. 제의의 진행은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소지 - 음복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다리목 서낭당
 기와지붕에 시멘트로 벽을 만들었으며, 금줄이 쳐져 있다. 서낭목은 소나무다. 서낭당 내부는 ‘성황지신위(城隍之神位)’라고 쓰여진 위패가 있다. 다리목 서낭당의 제의 명칭은 ‘당고사’다. 다리목 서낭당의 당고사는 연박 1리 1반~3반 주민들이 참석한다. 당고사는 매년 음력 정월 4일 오후 5시 정도에 지낸다. 제관은 노인회장, 대동계장과 총무가 맡는다. 제물로는 돼지머리⦁백설기 한 시루⦁탕⦁포⦁밤⦁대추⦁곶감 등을 진설한다. 제의의 진행은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소지 - 음복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도장골 서낭당
 함석 지붕에 나무 판자로 벽을 만들었다. 서낭당 내부에는 ‘성황신위(城隍神位)’라고 쓰여진 위패가 있고, 그 위에 금줄을 드리워 놓았다. 도장골 서낭당의 당고사는 매년 음력 정월 14일에 지낸다. 생기를 봐서 제관 및 축관을 선정하며,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금줄을 쳐서 금기를 철저하게 지킨다. 제물로는 백설기 한 시루⦁포⦁밤⦁대추⦁곶감⦁탕 등을 사용하며, 메나 나물을 놓지 않는다. 제의 절차는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소지 - 음복의 순으로 진행된다. 당고사를 지내고 나서 회비를 걷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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