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26 15:16
[봉양읍] 주포리[周浦里]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2,568)
14.주포리[周浦里]
주포리는 제천군 근우면 지역으로서, 제천시 영천동에서 오는 냇물이 빙 돌아 흘러, 내를 이루었으므로 ‘주포(주포)’ 또는 ‘추포’라고도 하였다. 마을 앞으로 중앙선이 지나고 옆으로는 충북선이 있어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다시 주포리라 하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승격에 따라 제원군 봉양면 주포리가 되었다가 1991년 1월 1일 제천시 봉양면이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시군통합과 동시에 봉양면이 읍으로 승격하며 제천시 봉양읍 주포리가 되었다. 봉양읍 소재지로서 경찰파출소, 초⦁중⦁고등학교, 우체국⦁농협 등의 관공서가 있다. 중앙아파트 건립으로 인하여 1995년 주포리 행정구역 4개리로 분구하였다. 5일장이 형성되고 있다. 특산물로는 벼, 담배, 고추 등이 있다.
◎ 주포리 지명유래
⦁가창골 : 주포 동쪽에 있는 마을. 창터에 있던 옛 제천현(提川縣)의 창집을 이 곳에 옮겼었 다고 함.
⦁개너밋재 → 주폿 고개.
⦁광탄(廣灘) : 주포 남쪽에 있는 여울. 주포천과 장평천이 합수 됨.
광탄(廣灘)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현 서쪽 21리에 있으며, 근원이 원주 치악산에서 나와 청풍군 북진 하류로 흘러간다.”라고 하였다. 『제천현지』 에는 “현에서 서쪽으로 21리에 있다. 발원은 원주 치악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서 주포(周浦)에 이른다. 주포에 냇물이 넘쳐흘러서 건너지 못하는 행인들은 이곳을 경유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기너밋고개 → 주폿 고개.
⦁둔댓골 : 비수리 위에 있는 골짜기. 둔덕이 짐.
⦁말바우 : 주포교 밑 물가에 있는 바위. 바위 위에 자국이 나 있는데, 옛날 장수의 말 발자국 이라 함.
⦁봉양농공단지 : 1992년부터 대림요업, 대림이낙스, SM전자, 정겨판넬공업 등 4개 업체가 있음.
⦁비소리(飛巢里) → 비수리.
⦁비수리[비소리] : 가창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 물이 흐르지 않으므로 비수리(非水里)라 하였 다가, 마을 위쪽 공동묘지에 있는 큰 바위에 수리가 새끼를 치고 살았으므로 비소리로 고쳤 음.
⦁작은둔댓골 : 둔댓골의 작은 골짜기.
⦁장터-고개 → 주폿 고개.
⦁주포(周浦) : 치악산과 감악산에서 발원한 광탄이 마을을 곡류하여 주포라고 하였음
주포(周浦)는 『제천현지』에 “현에서 서쪽으로 22리에 있으며, 꺾여서 서쪽으로 사계와 함께 합류한다. 언덕에 협곡은 암석이 험준하여 적은 빗물에도 번번이 막힌다.”라고 기록하였다.
⦁주포교(周浦橋) : 주포리와 연박리 경계에 있는 다리. 1923년 10월에 놓음. 길이 100m.
⦁주포창터(周浦倉-) → 창터.
⦁주폿고개[장터고개, 기너미고개, 개너밋재] : 주포리에서 장평리로 가는 고개. 장평 사람들은 주폿고개라고 부르며, 주포사람들은 주포 장이 서므로 장터고개. 또는 윤조원(尹調元)의 산 소 마양이 게가 엎드린 것처럼 생겼다 하여 기너미고개, 게너밋고개라고 함.
⦁중앙아파트 : 주포리 가창골에 있는(주)중앙공영의 아파트 4개동 447세대. 1994년 12월 입 주함.
⦁창터[주포창터] : 주포리 155번지 부근에 있는 터. 조선 때 제천현(堤川縣)에 딸린 창고가 있었음.
◎ 주포리 이야기
⦁주포의 유래
물줄기가 마을을 돌아나가서 주포리라 한다.
정문택 : 여가 개울터에요, 개울터. 이래 된 지, 된지는 한, 한 내 생각에는 한 오백년. 이렇게 된 지는. 물이 지금은 저리 내려가잖아요? 저리 내려가는거는, 그니까 한 오백년 전에 저쪽 터져서. 물이 저 위에 팔송서부터 이짝 대림영업 있잖아요. 그 앞으로 이리 일루 뺑, 뺑. 물이 여기서 이렇게 돌아서 이렇게, 이렇게 그니 여기 주포잖어. 그래서 주포잖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