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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제천문화원 마을기행 입니다.

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2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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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양읍] 학산리(鶴山里)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2,679)  
16.학산리

 학산리는 본래 제천군 근우면(近右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광암리(廣岩里), 학전리(鶴田里), 산척리(山尺里)를 병합하여 학전과 산척의 이름을 따서 학산리가 되었다.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승격에 따라 제원군 봉양면 학산리가 되었다가, 1991년 1월 1일 제천시 봉양면이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시군통합과 동시에 봉양면이 읍으로 승격하며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가 되었다.

◎ 학산리 지명유래

 · 광암(廣岩)1 : 광암이 있는 마을.
 · 광암(廣岩)2 : 산척 북쪽에 있는 넓은 바위.
 · 늘목1[어목] : 늘목 밑에 있는 마을.
 · 늘목2 : 늘목 동북쪽에 있는 고개. 널나무가 많았다고 함.
 · 뒷골[후동] : 광암 뒤쪽에 있는 마을.
 · 묘재[못재, 산척, 산척소] : 학전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 지방 하급 행정기관의 하나인 소(所)가 있었음.
 · 묫재 → 묘재.
 · 산사(山査) → 산사나무골.
 · 산사나무거리 → 산사나무골.
 · 산사나무골[산사나무거리, 산사, 산사동] : 창터 동북쪽에 있는 마을. 산사나무가 많았음.
 · 산사동(山査洞) → 산사뭇골.
 · 산척(山尺) → 묘재.
 · 산척소(山尺所) → 묘재.
 · 선대동 → 선텃골.
 · 선덕골 → 선텃골.
 · 선텃골[선덕골, 선대동, 슨텃골] : 광암 동북쪽에 있는 마을.
 · 슨텃골 → 선텃골.
 · 어목(於木) → 늘목.
 · 창터 : 묘재 서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창고가 있었다 함.
 · 천수암(天壽庵) : 학산에 있는 절. 네모 난 부도가 있음.
 · 학산교(鶴山橋) : 묘재에 있는 다리. 길이 15m. 1951년에 놓음.
 · 학전리(鶴田里) : 학산 남쪽에 있는 마을. 구학산의 아래가 됨.
 · 후동(後洞) → 뒷골.

◎ 학산리 문화유산

 · 학산리 고인돌
 중부 내륙의 유통의 원활화와 산업도로의 필요성으로 1989년부터 건설되고 있는 중앙고속도로(대구-춘천간)에 따른 문화유적 지표조사가 실시되어 찾아진 것이다. 제천에서 원주로 가는 5번 국도상의 신림 부분에서 도계(道界)를 따라 올라가다 봉양면의 명암리로 넘어가는 비끼재의 중간쯤에 위치하며, 이 계곡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는 용암천으로 흘러가 주포리에서 장평천과 만나 주포천으로, 다시 제천천으로 합류되어 남한강으로 흐른다. 2기의 고인돌이 찾아졌는데, 모두 구덩식 고인돌이다. 발굴 당시 도로 건설 사업이 진행되면서 흙을 덮어 2기의 고인돌 중 1기의 고인돌만을 확인하여 조사하였다. 찾은 1호 고인돌의 덮개돌의 크기는 240×170×64cm의 화강편마암으로 둘레에 돌아가면서 손질을 하여 당시 사람들이 고인돌을 조성할 때의 문화행위로 파악하고 있다. 이 고인돌이 위치한 곳이 강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고인돌 문화에 대한 귀중한 자료로 생각되었으나, 도로공사로 인하여 유적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 남종삼 생가
 순교자 남상교(南尙敎) 아오스딩이 살았던 유택이며, 그 아들 남종삼(南鍾三) 요한의 본가이기도 하다. 남아오스딩은 1866년 3월 10일에 체포되어 4월 17일에 공주의 충청감영에서 옥사 치명한 순교자로서 이때까지 생활하였던 곳이다. 남아오스딩은 순조 때에 현풍현감, 영해부사, 충주목사를 지냈으나,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 모든 관직을 버리고 신앙생활에 전념하고자 이곳에 은신하였다.
 남종삼 요한은 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승지(承旨)에 이르러 국왕을 보필하였으나, 대원군에게 ‘이이제이 방아책(以夷制夷 防俄策)’을 건의함으로써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 이후 이곳 제천 학산리에 거주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체포되어 1866년 3월 17일 서울 서소문 밖 광장에서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고, 1984년 성인품에 올랐다.
 이 유적지는 순교자 아오스딩과 성인 남종삼 요한 부자간의 신앙의 현장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었던 곳으로 이들의 순교정신을 헌양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성지로 정비하였다.

 · 마애선정비
 조선시대의 것으로 화강암반(높이 207cm, 폭 198cm)의 앞면만 다듬어서 음각으로 비신(碑身)과 비좌(碑座)를 새겼다. 크기는 비신이 80cm, 비좌 포함 99cm, 폭 35cm로 비좌는 연화문 모양을 새겼다. 암반에는 ‘현감이공용청덕애민선정비(縣監李公蓉淸德愛民善政碑)’라고 새겨져 있다. 옮겨진 마애선정비의 크기는 높이 130cm, 폭 155cm, 길이 218cm이다. 이 비석이 있는 비끼재는 조선시대에 제천에서 원주에 이르는 관도(官道)로, 남쪽이 천남역(泉南驛)과 북쪽의 신림역(神林驛) 사이의 가장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이 중요한 교통로의 자연 암석에 선정비를 새김으로써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이곳 비탈길에서 잠시 쉬어 가면서 볼 수 있었다고 여겨지며, 관아의 앞뜰에 세운 선정비와는 위치 선정에 있어서 매우 특징이 있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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