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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제천문화원 마을기행 입니다.

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2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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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면] 모정리[茅亭里]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3,924)  
모정리는 제처니 소재지에서 20KM 박달재 터널을 지나 백운면소재지에 도착, 평동천을 따라 애련방면으로 응평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모정리는 마을 중심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외곽부는 산지로 조성되어 있다. 뒤로는 ‘시향산’이 있고 앞으로는 ‘천등산’이 잡리잡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내천이 흐른다. 본래 제천군 서면 지역으로서, 모정(茅亭)이 있었으므로 ‘모정각’ 또는 ‘모정’ 이라 하였다. 1914년 헤ᅟᅢᆼ정 구역 폐합에 따라, 주론리(酒論里)와 왕당리(旺當里)를 병합하여 ‘모정리’라 하여 제천군 백운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4월1일 제천시 승격에 따라 제원군 백운면 모정리라 하다가 1995년1월1일 시군 통합에 따라 제천시 백운면 모정리가 되었다.
모정리는 1리와 2로로 나뉜다. 모정1리의 마을 면적은 246.4ha이며, 논은 23ha, 밭은 31ha이다. 인구수는 72명, 가구수는 30가구이며, 특산물은 고추, 인삼, 사과, 콩 등이다. 모정1리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은 ‘손물주’라는 선비로 전해지고 있다. 모정2리는 고추와 담배 그리고 축산단지를 이루고 있으며 시랑산에 둘러싸여 아담한 마을전경을 갖고 있다. 마을 면적은 275.3ha이며, 논은 15ha, 밭은 49.1ha이다. 인구수는 114명, 가구수는 51가구이다. 특산물은 고추 등이다.

◎ 모정리 지명유래

● 건너점골 : 건너다 보이는 곳에 쇠붙이를 구었던 골이 있었다고 함.
● 독점재 : 모정 남쪽에서 애련리로 가는 고개. 밑에 독점이 있었음.
● 돌트미 : 모정들.
● 모정들[돌트미] : 원모정 앞에 있는 들. 돌이 많았음.
● 모정(茅亭) : 모정리.
● 모정각(茅亭閣) : 모정리.
● 삼산넘어들 : 삼산(三山)을 넘어가는 곳에 들이 있다하여 삼산넘어들이라 불려지고 있음.
● 삼봉산(三峰山) : 왕당이에 있는 세 봉우리의 산.


  삼봉산(三峰山)은 문헌에 가질문산(加叱文山), 갈문산(乫文山)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에는 “가질문산은 현 서쪽 61리 강원도 원주 경계에 있다.”라고 하였으며, 『여지도서』 에는 “갈문산은 현에서 서쪽으로 75리에 있으며, 또한 백운산의 남쪽 줄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속담 : 모정 뒤쪽에 있는 마을.
● 수론[술론, 주론] : 왕당이 동북쪽에 있는 마을.
● 수론들 : 수론 안페 있는 들.
● 술론 → 수론.
● 숲거리 : 모정2리에서 모정1리로 가는 경계지점으로 20여 년 전 오리나무가 아름드리 고목나무 숲을 이루고 있어 숲거리라 이름 붙여짐.
● 시령산 : 모정리 동쪽에 있는 산. 시령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함.
● 애련골 : 모정리에서 애련리로 넘어가는 골짜기로 애련골이라고 함.
● 용구매기 : 모정들 앞 내에 있는 여울. 용이 등천하였다고 함.
● 용바위 : 용구매기에 있는 큰 바위.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데, 용이 등천할 때 갈라진 거이라고 함.
● 왕당이(旺堂-) : 모정 동북쪽에 있는 마을. 어귀에 서낭당이 있으며, 뒷산에 산제당이 있음.
● 왕당잇들 : 와당이 앞에 있는 들.
● 웃담 : 모정 안쪽에 있는 마을.
● 원모정(元茅亭) : 모정리의 원마을.
● 주론(酒論) → 수론.
● 천둥산 : 모정리 남쪽에 있는 산.
● 평풍재 : 모정에서 평동을 넘어가는 고개로 산이 평풍을 펼쳐 놓은 것 같다 고 하여 ‘평풍재’라 함

◎ 모정리 문화유산

● 모정리 보호수
  2003년 4월 제천시 보호수 제68호로 지정되었다. 수종은 소나무로 수령은 약 200년 정도 되었다. 나무의 높이는 9m이고, 둘레는 1.9m 이다.

● 시랑사지(侍郞寺址)
  시랑사지는 크게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랫단은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석축(最高1.8m)을 이용하여 약 40여 평의 건물지를 조성하였으며, 윗단은 인공적으로 쌓아 만든 석축(最高 2.5m)을 이용하여 약 55여 평의 건물지를 조성하였다. 사지내에서 주초석 등의 건물부재는 보이지 않으며, 단지 극히 소량의 기와편 만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훼손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지 앞에 윗면이 평평하게 다듬어진 자연석 바위(높이 2.3m, 둘레 7.2m, 바위 윗면 2.1 X 2.7m) 1기가 서 있는데, 위치나 생김새로 보아 시랑사지와 관련된 구조물로 생각된다.

◎ 모정리 이야기

● 모정리 마을 시조 손물주
천등산 자락 및에 손물주라는 선비가 살았다. 이분이 태어나기 전에는 천등 산에 나뭇잎이 자라지 않았는데, 이분이 태어난 후부터 초목이 자랐다고 전해진다. 모정리와 애련리 사이에 동산이 있는데, 이곳에 초립으로 정자를 지고 정자에 띠를 드리워, 선비께서 학업에 열중하였다. 결국 과거에 급제하고, 차후에 정승 반열에 올랐다. 그 때부터 띠 모(茅)자 정자 정(亭)을 써서 모정이 라고 한다.

  전종남 : 모정이라고서는 지은 거는 옛날 여기 저어 아래가면은 맨 끝에 가면은 큰 물 내려가는 데 있지? 거 봉우리가 요렇게 있어. 거기서 저기 영의정을 지낸 선물자 라 그래던가, 영의정을 지낸 옛날에, 옛날에.
  조사자 : 선물자요?
  전종남 : 어 선물자라 그래지, 선물자. 영의정을 한 선물자가 정자를 져{지어} 놓고서는 그 정자 보고 그 봉오리가 있어. 고 요만한 그 다리 건너 막 바로 조그만한 데 야트막핸 데. 거, 정자를 져놓고 공부를 했었는데. 영의정을 지냈었는데. 그 사람이 저기 그, 풀이 그 띠래는 풀이 있어. 풀이 여 벌겉이 이렇게 큰 뜰. 그 띠를 가지고서는 띠를 해가지고 지붕을 해 잇고 정자를 져 가지고. 띠 모자를 어. 그래서 뭐 그런 저 그거 근너 물 건너 있었는데. 거기를 뭐 옛날 축지법을 해서 근너 댕기면서 공부를 해민서 그 저기. 공부해던 데루나라 가지고, 띠 모자 정자 정자해 가지고서는 공부했다는 그런 유래 뿐이 아는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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