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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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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7-0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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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제천사
 글쓴이 :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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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제천사

지역특성
○ 한반도의 중심, 충북의 북동쪽에 위치한 제천시는 동쪽은 단양군, 서쪽은 충주시, 남쪽은 경북 문경시, 북쪽은 강원도 원주시와 영월군과 접하며 서울의 1.4배(883㎢)의 면적과 1.4%(14만) 인구를 보유함.
○ 우리나라 농경문화 최고유산 「의림지」(국가명승20호), 내륙의 바다 「청풍호」, 한국의 알프스 「국립공원 월악산」을 품고있는 산자수려한 청풍명월의 본향이며 구한말 전국최초 의병 창의지임.

선사시대
○ 석회암층의 발달로 자연동굴 형성 선사시대 주거지로 좋은 입지와 남한강 중심으로 한데 생활하던 구서기인들 일찍이 정착
- 대표적 유적지로 송학면 포전리 「우리나라 최초 동굴유적, 점말동굴」에서 66,000년전에 코뿔소 앞팔뼈에 사람의 얼굴을 조각한 중기 구석기시대 유물 1만여점 발굴(1973~1980, 연세대박물관)
※ 청풍 황석리 유적에서 3,000여년전 청동기시대인 고인돌이 출토 / 고인돌이 무덤이란 역사가설을 첫입증 / 출토인골이 한국인의 원류란 역사가설(1982~1983, 국립중앙박물관)
※ 선돌과 둘레석은 동양민주주의의 시초란 학계가설(1982~1983, 충북대박물관)
○ 고조선 붕괴후 북방 유이민 집단들의 남하통로로 삼한(마한, 진한, 변한)때는 마한의 영향권임
○ 삼한시대 진한의 발상지(구전)로 의림지(義林池)는 기원전 390년에 축초한 저수지로 제천의 진산 용두산 좌청룡 내룡과 우백호 내호의 정기가 서린 호서(호수의 서쪽은, 충청도)의 기점이 됨
- 삼한시대 3대저수지로 유명(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 이병도 「두계잡필」)
- 지금의 지명, 「남당(南堂)」(진한의 왕이 특별한때 행차하여 정사를 보고 의식을 베풀던 공간이란 역사가설)

삼국시대
○ 마한에서 성장한 백제가 4세기경에 한강하류 일대 장악으로 제천은 4~5세기 동안 백제에 통치를 받음.
- 도화리유적, 양평리유적, 왕암유적, 고암동유적 등에서 백제계의 유물이 출토
- 백제의 성열성(省熱城)이 현존하고 있어 성읍시대 백제의 「성열현」으로 고증됨
○ 4세기말 고구려 평창과 함께 제천은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터가 됨
- 광개토왕 남정때(396년)는 한강변 일대 충주, 제천 단양지역이 일시점령됨
- 고구려 장수왕(375년) 남진정책과 맞물려 5세기 중반까지 고구려가 점령(고구려의 최남단)
○ 고구려 군현이 되어 제천은 「내토군(奈吐郡)」, 청풍은 「사열이현(沙熱伊縣)」이 됨
○ 진한에서 성장한 신라 아달라왕 3년(156년) 월악산 등성이를 질러가는 계립령과 5년(158년) 영주와 단양을 잇는 죽령 등 한강과 연결하는 교통로 개척으로 고구려와 신라가 격돌 전쟁터가 됨
- 덕주산성, 성산고성, 작성산성, 가은암산성, 견지산성, 대덕산성 등 많은 성터가 잔존
○ 신라 진흥왕 12년(551년)에 청풍성열현인 「우륵」을 불러 청풍체 하림조를 경청한 이듬해 신라인 세제자에게 금가무(琴歌舞)를 전수시켜 정악으로 발전됨
- 당시 진흥왕은 고구려의 10군을 공취하여 군량미를 조달코자 우륵이 의림지를 부엽공법으로 대축조한 공로를 추모키 위해 우륵당을 세움
○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 척경정책으로 신라의 영토가 됨
- 결국, 제천은 삼국때 고구려·백제·신라가 마주치던 곳으로 고구려 문화 모습이 적지 않게 발견
○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경덕왕 16년(757년) 9주5소경을 설치하면서 고구려때 사용했던 내토군을 「내제군(奈堤郡)」으로, 사열이현은 「청풍현(淸風縣)」으로 개칭함
○ 후삼국 분열시기땐 철원을 중심으로 북원까지 궁예의 마진국에 속하였음으로 신라와 접경지역인 제천은 차츰 궁예의 휘하에 편입됨(봉양 - 비끼재 전설)

고려시대
○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내제군을 「제주군(堤州郡)」으로 개명하고 성종 11년(992년)에는 「의천(義泉)」, 「의원(義原)」으로 부름
○ 성종 14년(995년)에 중원도에 속하여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목종 8년(1005년)에 폐지됨
○ 현종 9년(1018년)에 5도 양계로 개편시 제천(제주)은 원주에 편입되었고, 예종 원년(1106년)에 감무(監務)를 둠
○ 청풍은 현종 9년(1018년)에 충주에 편입 뒤에 감무를 두었고 충숙왕 4년(1317년)에 청풍현 승(僧)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었으므로 지군사로 승격됨 ※고려현종9년에 제주군과 청풍현으로 개편
○ 1217년(고종4년) 거란의 10만 대군이 박달재를 공경해올 때 김취려 장군은 정상을 먼저 점령하고 좌우에 군대를 포진해 적군을 섬멸함
○ 1258년의 몽골군 침입때에도 충주, 제주, 청풍의 별초군이 박달재에 복병을 두어 적군을 격파함

조선시대
○ 태종 13년(1413년) 군현제 정비에 따라 <제주를 제천(提川)으로 개칭> 현감 종6품을 임명, 청풍은 군수 종 4품을 보냄
○ 현종 원년(1660년)에 중궁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관향(貫鄕)이라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켜 도호부사 종3품으로 병마동첨절 제사를 겸직시킴
○ 성종 12년 만들어진 「동국여지승람(동람도 충청도 부분)」은 16세기 후반 목판본으로 당시 제천의 진산으로 「용두산과 감악산」 청풍의 진산으로 「가은암산과 월악산」을 배치함
○ 18세기 전반 「호서전도」에 제천현 지도는 중심에 읍치를 배치하고 제천의 면을 동면, 남면, 북면, 현좌면, 현우면, 근좌면, 근우면, 원서면으로 구성됨
○ 18세기 중반 「해동지도」에 제천현 지도는 현우면, 현좌면, 근우면, 근좌면, 남면, 동면, 북면, 원서명으로 구성하며 진산인 용두산과 그 아래의 의림지를 읍의 상부에 그려놓음
○ 청풍부 지도는 읍내면, 근남면, 원남면, 근서면, 원서면, 북면, 동면, 수하면으로 구성됨
○ 18세기 중반, 명조 36년(1760년) 「여지도서」엔 제천의 8면 100리와 청풍의 8면 47리 자연부락이 기록화 됨
○ 1801년(순조1년) 신유박해때 황사영은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만든 봉양 구학리 배론의 천주교인 마을로 와서 토굴에 숨어있으면서 조선의 천주교회를 구하기 위해 흰 명주천에 글을 써서 북경주교에게 전하려다 검거되어 처형된 백서사건(帛書事件)이 일어남
○ 1856년(철종7년) 배론에 신학교가 세워지고 이곳의 신자들에게 성사가 베풀어졌다. 1860년 경신박해때 이곳에서 피신하는 신자가 늘어나자 신학교에서는 그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옹기를 굽기 시작하였다. 1866년(고종3년) 병인박해때 프랑스 신부 9명과 신자 8,000여명이 순교하면서 배론 신학교도 폐교되고 지금의 터만 남아있음.
○ 고종 33년(1895년) 13도제 개편시 제천과 청풍은 충청북도 관찰도 소속 군으로 변경됨
○ 고정 41년(1903년) 지방제도 개혁시 제천군 남면을 성산면으로 청풍군 동명과 북면을 통함 금수면으로 개칭(당시 도청소재지는 충주로 1908년 청주로 옮김)
○ 1895년(을미년) 단발령으로 국내 첫 의병 창의지역인 「을미 의병 창의지, 제천」은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피해를 당함
○ 특히, 1907년(정미년) 8월15일 천남리 전투에서 이강년 의병부대에 참패한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그해 8월23일 제천지역에 대한 초토화 작전감행 제천 읍내를 완전 불바다로 파괴함(영국 데일리 메일지 메켄지 기자의 「조선의 비극」에서 당시 폐허가 된 제천을 지도상에서 싹 지워져 버렸다라고 표현)
○ 1909년 충청북도 관하엔 18개군이 있었으며 청풍군은 8면 14동 70리, 제천군은 8면 20동 114리로 구성됨

근대
○ 1910년 10월 1일, 전국적인 면 단위제 실시로 제천군은 8면 130동리, 청풍군은 8면 76동리로 구성
- 제천군 : 현좌면, 현우면, 동면, 남면, 근좌면, 서면, 근우면, 북면
- 청풍군 : 읍내면, 근남면, 원남면, 원서면, 근서면, 동면, 북면, 수하면(1912년 원서면이 백운면으로 개칭)
○ 1914년 3월 1일 지방제도 전면개편으로 청풍군 일원과 충주 관할의 덕산면 10개 마을을 제천군에 이속시켜 오늘의 제천시 경계를 확정함(당시, 청풍군의 읍면과 근서면을 페합해 비봉면으로 개칭함)
- 읍내면, 백운면, 성산면, 송학면, 근좌면, 근우면, 비봉면, 수산면, 금수면, 한수면, 덕산면, 수하면
○ 1917년엔 금수면과 성산면 폐합해 금성면으로 개칭
○ 1940년 11월 1일 제천면이 제천읍으로 승격 제천군은 1읍8면 체제갖춤(1942년 3월 31일에 제천읍사무소 신축<서부동 11번지>이전)

현대
○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으나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제천은 9월 미군 1개 중대가 조정 시행
○ 1947년 금성면 북진리·교리·학현리와 수산면 도화리를 청풍면, 청풍면 고명리를 수산면으로 편입시킴
○ 1973년 7월 덕산면 수곡리를 수산면으로 편입/1979년 댐 건설로 5면 61리가 수몰(18,693명 이주로 지금의 청풍호가 만들어짐)
○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제천시로 승격(제천시를 제외한 제천군은 분리되어 제원군으로 개칭)
○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제천시와 제천군이 통함 3월 2일엔 봉양면이 봉양읍으로/2002년엔 고암동, 모산동이 신설되는 등 오늘의 제천시가 됨(17개 읍면동 - 봉양읍, 백운면, 한수면, 덕산면, 수산면, 청풍면, 금성면, 송학면, 교동, 의림지동, 중앙동, 남현동, 영서동, 의림동, 용두동, 신백동, 청전동, 화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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