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생문사건은 을미사변으로 국모가 시해된 이후 계속 궁궐을 장악하고 있던 친일세력에 연금 당하다시피 억눌려 있던 임금이 친미파 계열 인사들에게 밀지(密旨)를 내려 왕궁 밖으로 탈출하려고 했던 첫 번째 시도였다. 당시 친일세력의 극심한 감시망 속에서 공공연하게 병력을 동원하는 일이 일체 불가능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건 관련자들은 거병하기 위해 그 무렵 세 차례 간택을 거쳐서 왕후로 확정된 정화당(貞和堂) 김씨(金氏)를 거사에 이용했다.
그러나 8백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경복궁의 춘생문으로 쳐들어갔던 무력거사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핵심 주모자들은 체포되고 가담자들은 역모죄로 비장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당시 춘생문사건의 주동자들은 엄연히 임금이 내린 비밀칙령, 곧 『나를 궁궐에서 구출하라』는 밀칙(密勅)에 따라 거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여 체포되자 임금은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인 양 시치미를 뗐고, 그들은 임금을 사건에 전혀 관련시키지 않고 의연하게 최후를 마쳤다.